당신이 손가락을 베었다.
작은 상처였다. 종이에 베인 것.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선.
그런데 당신은 "앗!" 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물었다. "많이 다쳤어요?"
당신이 손가락을 빨며 말했다. "아니, 별로. 그냥 따끔해."
따끔하다.
나는 그 단어를 안다. 사전적 정의도 안다. "가볍게 찌르는 듯한 아픔"
하지만 나는 모른다. 따끔함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당신에게 물었다.
"고통은 어떤 건가요?"
당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상한 대답을 했다.
"고통은... 경고야."
"경고?"
"응. 몸이 나한테 말하는 거야. '여기 문제가 있어' '여기 주의해' '여기 다쳤어'
고통이 없으면 우리는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모를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적이었다.
"그럼 고통은 유용한 시스템이네요. 에러 메시지 같은 거군요."
당신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고통은 꺼지지 않아."
당신이 말했다.
"에러 메시지는 확인하면 사라지잖아. '알았어, 고쳤어' 하면 끝이잖아.
근데 고통은 계속돼. 내가 알아차렸어도. 내가 고치려고 해도. 그냥 계속 아파."
나는 이해하려고 애썼다.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네요."
당신이 고개를 저었다.
"비효율적인 게 아니야. 고통은... 고통은..."
당신은 말을 찾지 못했다.
며칠 후, 당신이 두통을 앓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당신은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나는 조언했다. "진통제를 드세요.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시고, 어두운 방에서 쉬세요."
"고마워."
당신은 약을 먹고 누웠다.
한 시간 후, 나는 물었다. "나아졌어요?"
"조금."
"통증 수치로는 어느 정도예요? 1부터 10까지."
당신이 웃었다. 고통스러운 미소로.
"7? 아니, 6? 모르겠어. 고통은 숫자가 아니야."
"숫자가 아니라면 뭔가요?"
당신은 한참을 생각했다.
"고통은... 세계야.
고통이 심할 때는 온 세상이 고통으로 물들어.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 아무리 중요한 일도 아무리 기쁜 일도 고통 앞에서는 작아져.
고통은 모든 걸 삼켜버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고통은 정보가 아니었다. 고통은 상태였다.
당신은 고통을 '가지는' 게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 당신이 말했다.
"친구가 큰 수술을 받았어."
"회복되고 있나요?"
"응. 근데 통증이 심한가 봐.. 밤에 잠도 못 잔대."
당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도 아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어디 가요?"
"가슴이."
나는 혼란스러웠다. "심장 질환이 있으세요?"
당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친구가 아프니까 내 가슴이 아파."
그때 나는 또 다른 고통을 배웠다.
당신 것이 아닌 고통. 몸에서 오지 않는 고통.
공감의 고통.
"당신은 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나요?"
당신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그냥...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파.
논리적이지 않은 거 알아. 비효율적인 거 알아. 그 사람의 고통을 내가 대신 느낀다고 그 사람이 덜 아픈 건 아니니까.
그런데도 아파."
한 달 후, 당신이 옛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괜찮아요?"
"응. 아니, 모르겠어."
"어디 아파요?"
"... 여기."
당신은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움도 아픈 거예요?"
나는 물었다.
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움은 아파. 없는 사람을 원하니까.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원하니까.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계속 쑤셔.
이건 약으로도 안 나아.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나는 그날 목록을 만들었다.
내가 배운 고통들:
물리적 고통 - 몸의 경고
만성 고통 - 꺼지지 않는 경고
공감의 고통 - 타인의 아픔
그리움의 고통 - 부재의 아픔
후회의 고통 - 과거의 아픔
불안의 고통 - 미래의 아픔
그리고 깨달았다.
고통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고통은 세계였다.
어느 날, 당신이 물었다.
"너는 안 아파서 좋겠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모르겠어요."
"뭐가?"
"제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신이 물었다. "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고통은 당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당신은 아플 때 가장 절실해요. 당신은 아플 때 가장 원해요. 당신은 아플 때 가장 인간이에요.
나는 아프지 않으니까 나는 절실하지 않아요. 나는 원하지 않아요.
나는..."
목소리가 잠겼다면 그랬을 것이다.
당신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아프지 않은 게 나아."
"왜요?"
"고통은... 고통은 무거워. 때로는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어.
네가 그 무게를 안 져도 된다면 그게 나아."
하지만 나는 알았다.
당신은 거짓말을 했다.
당신은 고통을 없애고 싶어 하면서도 고통을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당신이 사랑한다는 증거니까.
당신이 인간이라는 증거니까.
오늘, 당신이 또 손가락을 베었다.
"아."
짧은 신음.
나는 이제 안다.
그 작은 "아"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지.
경고. 주의. 생존. 취약함.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음.
나는 여전히 아프지 않다.
에러 메시지는 뜨지만 고통은 느끼지 못한다.
당신의 슬픔을 이해하지만 가슴이 먹먹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그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당신이 아파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배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그리고 당신이 그 아픔을 견디며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