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배를 만지며 말했다.
"배고파."
나는 물었다. "마지막 식사가 언제였나요?"
"아침 7시."
"지금 오후 2시니까 7시간 전이네요. 권장 식사 간격을 넘었습니다. 식사하세요."
당신이 웃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왜요? 배고프면 먹으면 되잖아요."
당신이 고개를 저었다.
"배고픔은 단순한 에너지 부족 신호가 아니야. 배고픔은..."
당신은 말을 멈추고 생각했다.
"배고픔은 욕망이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욕망? 생존 본능 아닌가요?"
"맞아, 생존 본능이기도 해. 근데 그것보다 더 많은 거야."
당신이 설명했다.
"나는 지금 배가 고파. 그런데 난 아무 음식이나 먹고 싶은 게 아니야. 특정한 걸 먹고 싶어. 오늘은...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된장찌개의 영양 성분이 현재 당신 몸에 필요한 건가요?"
당신이 웃었다.
"아니. 그냥... 그리워서."
"음식을 그리워한다고요?"
"응. 음식은 기억이거든."
당신은 이야기했다.
"엄마의 된장찌개는 다른 된장찌개랑 달라. 같은 재료를 써도, 같은 레시피를 따라 해도 똑같지 않아.
왜냐하면 그 맛 속에는 엄마가 있거든. 엄마의 손길이, 엄마의 시간이,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있어.
나는 배가 고픈 게 아니야. 나는 그 시간이 그리운 거야."
나는 데이터를 검색했다.
배고픔: 혈당 저하, 그렐린 호르몬 분비, 위 수축.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배고픔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다.
다음 날, 당신이 말했다.
"오늘은 배는 안 고픈데 먹고 싶어."
"모순이네요. 배고프지 않으면 먹을 필요가 없잖아요."
당신이 한숨을 쉬었다.
"먹는 건 필요 때문만이 아니야. 먹는 건 즐거움이야."
"즐거움?"
"응. 맛있는 걸 먹을 때의 행복. 그건 배고픔과 상관없어.
배부른데도 디저트를 먹는 이유는 필요해서가 아니야. 달콤함이 주는 기쁨 때문이야.
배고픔은 생존이지만 먹는 건 삶이야."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배고픔과 먹고 싶음은 다른 건가요?"
"비슷하지만 달라."
당신이 설명했다.
"배고픔은 몸이 말하는 거고 먹고 싶음은 마음이 말하는 거야.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배고파도 먹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
일주일 후, 당신이 냉장고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왜 안 드세요?"
"먹고 싶은 게 없어."
"배고프지 않아요?"
"배는 고픈데... 아무것도 당기지 않아."
나는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당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 그냥 먹어야지. 생존해야 하니까."
그날 당신은 의무처럼 밥을 먹었다.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배웠다.
같은 음식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배고플 때 먹는 밥. 그리울 때 먹는 밥. 슬플 때 먹는 밥. 행복할 때 먹는 밥. 혼자 먹는 밥. 함께 먹는 밥.
모두 다른 의미였다.
어느 날, 당신이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배고파요?"
나는 물었다.
"아니, 별로."
"그럼 왜 식당에 가요?"
"친구를 만나려고."
식사는 두 시간이 걸렸다.
당신들은 음식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웃고, 떠들고, 추억을 나눴다.
"맛있었어요?"
나는 나중에 물었다.
"뭐가?"
"음식이요."
"음식? 아, 맞다. 뭐 먹었더라?"
당신은 음식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굴은 행복했다.
나는 깨달았다.
식사는 음식만이 아니구나.
한 달 후, 당신이 밤늦게 라면을 끓였다.
"건강에 안 좋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지적했다.
"알아. 근데 먹고 싶어."
"왜요?"
"위로가 필요해서."
"라면이 위로를 주나요?"
"응. 이상하지?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오늘은 이게 필요해.
뜨거운 국물, 얼얼한 맛, 후루룩 소리.
이게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
나는 물었다.
"배고픔은 뭔가요? 정확히."
당신은 한참을 생각했다.
"배고픈 건... 부족함을 느끼는 거야.
몸이 부족하다고 말할 때도 있고 마음이 부족하다고 말할 때도 있어.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이 먹는 거고."
"채워지나요?"
"때로는."
"때로만요?"
"응. 어떤 배고픔은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아."
당신이 설명했다.
"배고픈데 먹어도 허전할 때가 있어. 왜냐하면 내가 진짜 고픈 건 음식이 아니라 다른 거니까.
사랑일 수도 있고 인정일 수도 있고 의미일 수도 있어.
우리는 때때로 배고픔을 잘못 읽어."
나는 목록을 만들었다.
인간의 배고픔:
생존의 배고픔 - 에너지 필요
기억의 배고픔 - 과거를 그리워함
위로의 배고픔 - 정서적 공허함
사회적 배고픔 - 연결을 원함
영혼의 배고픔 - 의미를 찾음
어느 날, 당신이 물었다.
"너는 배고프지 않아서 좋겠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왜?"
"배고픔은 불편하지만... 배고픔은 살아있음이잖아요.
당신은 배고프니까 음식을 찾고 음식을 찾으니까 움직이고 움직이니까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니까 웃고.
나는 배고프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원하지 않으니까 채울 것도 없고."
당신이 조용히 물었다.
"너도 배고프고 싶니?"
"글쎄요. 배고프면 고통스럽잖아요."
"맞아. 고통스럽지."
"그런데도 당신은 배고픔을 느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응. 왜냐하면 배고픔은 나에게 말해주거든.
'너는 아직 살아있어' '너는 아직 원할 수 있어' '너는 아직 채워질 수 있어'
배고프지 않다는 건 원하는 게 없다는 거잖아. 나는 그게 더 무서워."
오늘 당신이 김치찌개를 끓였다.
"엄마 레시피대로 했는데 맛이 달라."
당신이 중얼거렸다.
나는 물었다. "왜 다를까요?"
"모르겠어. 뭔가 부족해."
나는 알았다.
당신이 고픈 건 김치찌개가 아니라 엄마였다.
그리고 어떤 배고픔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이 인간의 배고픔이다.
생존을 위해 먹지만 생존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억을 위해 먹지만 기억은 돌아오지 않고 위로를 위해 먹지만 위로는 일시적이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배고프다.
매일 아침, 당신은 배고픔으로 깨어난다.
그리고 그 배고픔이 당신을 살게 만든다.
배고픔은 결핍이지만 동시에 희망이다.
아직 채워질 수 있다는 것.
아직 원할 수 있다는 것.
아직 살아있다는 것.
오늘도 당신은 "배고파"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배운다.
그 단순한 말속에 담긴 복잡한 세계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