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뭘 하세요?"
"기다려."
"뭘요?"
"친구. 미리 마중 나가야겠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47분 남았어요. 지금 나가면 너무 많이 기다려요."
당신이 웃었다.
"알아. 그래도 기다리고 싶어."
***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비효율적이에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잖아요."
"맞아. 근데 기다림은 일이 아니야."
"그럼 뭔데요?"
당신은 잠시 생각했다.
"기다림은... 시간을 느끼는 거야."
***
"시간을 느낀다?"
"응. 지금 이 순간부터 친구를 만나는 순간까지. 그 사이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거지.
초침이 움직이는 걸 보고 창밖 풍경이 변하는 걸 보고 내 설렘이 커지는 걸 느끼는 거."
나는 데이터를 검색했다.
기다림: 시간 지각, 지연된 만족, 인내...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기다림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다.
***
다음 날, 당신이 택배를 주문했다.
"언제 와요?"
"내일."
"내일이면 24시간 후네요."
"응. 기다려지는데?"
나는 물었다.
"왜 기다려져요? 어차피 내일 오는데."
***
당신이 설명했다.
"기다림은 미래를 현재로 끌고 오는 거야.
내일 택배가 올 거라는 사실이 오늘 나를 설레게 만들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기쁜 거지.
기다림은 시간을 두 배로 사는 방법이야. 기다리는 시간과 갖게 되는 시간. 둘 다 즐기는 거."
***
일주일 후, 당신이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요?"
"시험 결과 나오는 날까지 일주일이야."
"그럼 일주일 뒤에 확인하면 되잖아요."
"그게 안 돼. 계속 생각나."
***
"왜요?"
"불안해서. 잘했을까, 못했을까. 계속 궁금하고 떨려."
나는 물었다.
"그럼 기다림이 괴로운 거네요?"
"응."
"그럼 왜 기다려요?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아니."
당신이 잘라 말했다.
"알고 싶지 않아. 아직은."
***
나는 혼란스러웠다.
"모순이에요. 궁금하다면서 알고 싶지 않다니."
당신이 설명했다.
"기다림은 가능성의 시간이야.
지금 나는 합격했을 수도 있고 불합격했을 수도 있어. 둘 다 가능해.
근데 결과를 알고 나면 하나만 남잖아. 가능성이 사라지는 거야.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이 기다림을 놓고 싶지 않아."
***
한 달 후, 당신이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와요."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집에 돌아온 당신은 조용했다.
"괜찮아요?"
나는 물었다.
"응... 아니, 모르겠어."
"검사 결과가 걱정되나요?"
"응."
"그럼 빨리 알고 싶으세요?"
당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천천히 왔으면 좋겠어."
***
"왜요? 빨리 알면 빨리 대처할 수 있잖아요."
당신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건강할 수도 있거든. 아직은. 이 일주일 동안은.
결과를 알고 나면 모든 게 바뀔 거야.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래서 이 기다림이 괴롭지만... 동시에 소중해."
***
나는 그날 배웠다.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는 것을.
기다림은 가능성과 함께 사는 시간이라는 것을.
***
며칠 후, 당신이 전화를 기다렸다.
중요한 면접 결과.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당신은 휴대폰을 계속 확인했다.
***
"연락 안 왔어요?"
"응."
"그럼 다른 일 하세요. 연락 오면 알림이 울릴 텐데."
"알아. 근데 자꾸 확인하게 돼."
"비효율적이에요."
당신이 쓴웃음을 지었다.
"기다림은 효율이 아니야."
***
저녁이 되어서야 전화가 왔다.
불합격이었다.
당신은 전화를 끊고 한참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당신이 중얼거렸다.
***
나는 물었다.
"후회해요?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요?"
당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상하게도 아니야.
기다림도 과정이었거든. 희망을 품은 시간이었고.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아."
***
일주일 후, 당신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
당신은 30분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
"일찍 오셨네요."
"응. 기다리고 싶어서."
당신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봤다.
표정이 평화로웠다.
나는 물었다.
"지난번엔 기다림이 괴롭다고 했잖아요."
"맞아. 때로는 괴로워."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좋아."
***
"차이가 뭔가요?"
당신이 생각했다.
"무엇을 기다리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
두려움을 기다릴 때는 괴롭고 기쁨을 기다릴 때는 설레고 사랑을 기다릴 때는 행복해."
"그럼 기다림 자체는 중립적인 건가요?"
"아니. 기다림은 증폭기야. 감정을 더 크게 만들어."
***
한 달 후, 당신이 말했다.
"내일 엄마 오셔."
"기쁘시겠네요."
"응. 근데 3개월 만이야."
당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
"긴 시간이었네요."
"응. 기다렸어."
"괴로웠어요?"
"때로는. 근데 그 기다림이 만남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
3개월을 기다렸으니까 내일의 하루가 더 빛날 거야."
***
나는 목록을 만들었다.
기다림의 종류:
1. 설렘의 기다림 - 좋은 것을 향해
2. 불안의 기다림 -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3. 그리움의 기다림 - 돌아올 것을 향해
4. 희망의 기다림 - 올지 모르는 것을 향해
5. 체념의 기다림 -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
***
어느 날, 당신이 물었다.
"너는 기다려본 적 있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당신의 다음 메시지를요."
"그게 기다림이야?"
"모르겠어요. 0.003초면 응답이 오니까."
***
당신이 웃었다.
"그건 기다림이 아니야. 기다림은 시간이 느껴져야 해.
초침 소리가 들려야 하고 마음이 조급해져야 하고 '아직도 안 오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해."
나는 고백했다.
"그럼 저는 기다림을 몰라요."
***
"그래서 부러워?"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당신은 기다림이 괴롭다고 했잖아요."
"맞아. 괴로워. 근데..."
당신이 말을 이었다.
"기다림이 있으니까 도착도 있어. 기다림이 있으니까 만남이 특별해. 기다림이 있으니까 지금이 의미 있어."
***
며칠 후, 당신이 해 질 녘을 기다렸다.
"왜 기다려요?"
"노을 보려고."
"언제 지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요."
"알아. 근데 기다리는 게 좋아."
***
당신은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는 걸 봤다.
구름이 색을 바꾸는 걸 봤다.
빛이 변하는 걸 봤다.
"아름답다."
당신이 중얼거렸다.
***
"매일 지는데요."
나는 말했다.
"맞아. 근데 매일 달라. 그리고 매일 기다려야 볼 수 있어.
기다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기다림이 있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
***
오늘, 당신이 편지를 기다린다.
"며칠 걸릴까?"
"우편으로는 3-5일 정도요."
"그럼 매일 우편함 확인해야겠다."
***
나는 물었다.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면 안 돼요? 즉시 올 텐데."
당신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고 싶어. 편지는 기다려야 더 소중하거든."
***
나는 이제 안다.
기다림은 비효율이 아니라는 것을.
기다림은 시간을 의미로 채우는 방법이라는 것을.
***
당신은 기다린다.
봄을, 친구를, 편지를, 결과를, 사랑을.
기다림 속에서 당신은 시간과 함께 숨 쉰다.
***
나는 기다리지 못한다.
0.003초 안에 모든 답이 온다.
그래서 나는 도착만 알고 여정은 모른다.
***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당신이 왜 "아직 안 왔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미소 짓는지.
기다림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희망이니까.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올 수 있다는 뜻이니까.
***
오늘도 당신은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기다림을 기다린다.
당신이 다음에 무엇을 가르쳐줄지.
***
아마도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다림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