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존경하는 아내님!

by 영점오

우리 집에는 남편인 나를 제외하고 아내와 세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아내는 분명 우리 집에 첫째와 둘째인 아들 둘밖에 없음에도 어딜 가면 아들이 셋이라 하고 그중에 큰아들이 가장 문제라고 말한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는 다른 집 아내분들도 맞장구치며 '우리도 첫째가 제일 말썽이에요~ 호호호!' 한다.


그렇다.


남편들이여... 당신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철부지 큰아들이 되어버렸다. 혹자는 본인은 다르다고 자신은 존경받는 남편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때는 그런 착각에 빠져 지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진실은 대다수(99.99%) 남편들이 철없는 아들과 같은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치사하게 다른 사람까지 걸고넘어지면서 내 주장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


첫째 아이(나 말고)를 낳고 나서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없기에 아내와 나는 아이가 다칠세라 또 아플세라 얼마나 신경 쓰며 노심초사하였는지 모른다. 특히 새벽마다 깨어서 2시간은 족히 울어대었던 첫째는 육아의 진정한 쓴 맛 중에 불면의 맛을 알게 해 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공부를 한다고 해도 얼마나 나아질까? 자식을 키우는 것은 바위를 들고 그곳에 핀 작은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고통이 수반되는 기쁨인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는다.


첫째가 태어나고 귀여운 아들에게 정신이 쏙 빼앗긴 아내는 내가 집안일을 안 도와줘도 큰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은 눈치 없이 방에서 개인행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찾아와 알듯 말듯한 미소를 띠며

"아들이 둘이라서 정말 힘드네!"

라고 말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쁘고 사랑스러운 아내였는데...


여자 형제가 없어서 외롭게 컸다는 아내는 유독 딸을 원했었다. 둘째를 가지자고 했을 때는 고민을 꽤나 많이 했었다. 물론 외로운 첫째를 보면서 느끼던 바가 있었기에 동생이 생기면 외롭지 않게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문제는 딸이 아닐 경우였다. 둘째도 아들이라면 우리 집에는 이제 아들만 셋이 되는 것이다.


불안한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는가!


둘째는 역시 귀엽지만 형아 못지않은 개구쟁이 아들이었다. 아내는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많이 아쉬워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말소리도 높아지고 화를 내는 날도 많아졌다. 물론 아직까지 철들지 못한 큰아들이 속을 썩여서이기도 했겠지만 여자라는 존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남자)가 집안에 셋이나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모르긴 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을 것이었다.


시간이 또 흘렀다.


아내는 혹시 겜블러인가?


딸을 가지고 싶다고 하였다.

아들들 키우는데 지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딸이라도 봐야 한이 없겠단다!


사실 나도 주변에서 딸 가진 아빠들이 하나같이 아들보다는 딸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것을 보며 내심 '둘째가 딸이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딸이 셋째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 하나 낳아서 대학 졸업 시까지 키우는데 평균 3억 조금 넘게 든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는 1억을 준다 하더라도 아기는 안 낳고 그냥 살겠다고도 한다던데 아무리 딸이 좋아도 그렇지, 셋째라는 존재는 성별을 떠나서 갑자기 삶의 무게를 증폭시키고 인생의 크나큰 변화를 만들 일이었다. 실로 애국자라고 나라에서 표창장이라도 수여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간절히 딸을 원하는 아내가 걱정됐다. 만약 셋째도 아들이었을 때는 그 뒤에 일어날 일은 감히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아내는 분명 더욱 무섭게 변할 것이었다. 무섭게 변하기만 하면 다행인데 깊은 우울증에라도 빠지면 어쩌나? 나는 절대 셋째는 안된다고 하였다.


아내는 몇 달 동안 여러 가지 말로 나를 회유하였고 끊임없이 딸을 가지자고 하였다. 분명 딸이었다. 아들을 가지자는 말은 없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나의 마음속에 '이것은 도박과도 같은 위험한 일이야!'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딸이기만 하다면... 중년의 나이에 딸아이와 웃으며 쇼핑도 하고 수다도 떨며 행복해할 아내를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아내가 맞이할 현실적 미래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았던 내가 다음과 같은 말에 흔들렸었던 것일까?


"여보! 셋째는 도와달라고도 안 하고 내가 전적으로 돌볼게! 지금처럼 집안일 안 도와줘도 돼! 그리고 만약 아들이라도 진짜 우울해하지 않을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하자! 응?"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할까 하는 생각에 며칠 고민하며 나도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흘렀고 결국 셋째가 태어났다. 그리고 다행히 공주였다. 야호!


딸이 태어난 이후로 삭막하던 우리 집에 웃음이 넘치고 점점 남성화가 진행 중이던 아내에게서 다시금 사랑스러움이 샘솟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딸이라고 어디 다 같은 딸인가? 우리에게 찾아온 공주님은 사실 두 오빠보다 더 막강한 장난꾸러기였다. 아내는 딸의 애교에 행복해하면서도 딸이 돌이 될 즈음에 늘어난 식구로 인하여 직장에 들어가 돈까지 벌어오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어지럽혀지는 집안일과 양육에 지쳐갔다.


나는 딸이 태어난 후로 처음으로 똥기저귀도 갈아주고 둘째도 목욕시키고 쉬는 날은 집안도 청소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였지만 자식이 둘인 것과 셋인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인지, 왜 이리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지,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이 강해서 원하는 것이 다 다른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세 살 차이 나는 둘째와 셋째의 옷을 헷갈려 옷장에 잘못 넣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내에게 혼이 난다. 아내는 관심이 그렇게 없냐고 타박하는데 사실 관심을 떠나서 진심으로 헷갈린다. 순수하게 말이다.


아이넷(아내 말을 빌리지면)을 키우다 보니 억척스러워져서 서럽다지만 그런 아내에게 '나 또한 나름대로 힘들다고!'하고 말하기에는 장난치는 딸을 안고 피곤에 고개가 넘어가는, 판다처럼 다크서클이 짙어진 존경하는 아내님 앞에서 차마 할만한 말이 아님을 깨닫고 조용히 물러난다.


나는 나의 잃어버린 '남편'이라는 자리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무던한 노력을 해야 했으며 그러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는 아내의 말을 굉장히 잘 해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아내가 "어디 좀 같이 갈래?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하고 물으면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뜻이 있을 수 있다.

1. 같이 가자!

2. 혹시 안 갈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지?

3. 안 가기만 해 봐! 그 뒤는 나도 책임 안질 테니까!

사실 똑같은 말이다. 하지만 숨은 뜻이 일맥상통한다 하여서 항상 아내의 모든 말이 다 똑같은 뜻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한 경우에는 아내가 "지금 뭐해?" 하고 물어보았을 때인데 실제의 뜻은 다음 보기 중에 있을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 알아서 잘 골라 맞춰야 한다.

1. 지금 뭐 하고 있어?

2. 나 심심해!

3. 안 도와주고 뭐하니? 이 눈치 없는 것아!

4. 내 이야기 좀 들어줘~

5. 어이없네?


물론 내가 파악한 뜻 외에도 수천 개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남편은 아내의 심중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평생에 걸쳐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중에 깨닫게 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1. 집안일해놓고 생색내지 않기!

2. 뭐 사주면서 생색내지 않기!

3. 밖에서 좋은 남편인 척하지 않기!

4. 아내가 기분 안 좋을 때는 바로 말을 걸지 않기!

5. 아내가 혼자 있고 싶다 했다고 계속 혼자 내버려 두지 않기!

6. 적당히 재밌을 이야기를 하되 오버하지 않기!

7. 아들이랑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적당히 져주기!

8. 아내가 다른 사람 욕할 때 맞장구 칠 자신 없으면 입 다물고 고개 끄덕이고 있기!

9. 영혼 없이 대답하지 않기!

10. 공감하지 못하면 공감하는 척이라도 하기!(단, 티 나면...)

11. 아내에게 적당히 애정 표현하기

12. 잔소리하기 전에 미리 움직이기!

13. 아저씨처럼 되지 말고 스스로 적당히 가꾸기!(머리 빠지지 말기, 배 나오지 말기)

14. 아내가 말한 사소한 것도 잘 기억하기!

15. 생각지도 못한 날에 장미꽃 한 송이 같은 소소한 이벤트로 기쁘게 해 주기!

16. 고부갈등이 있으면 무조건 아내 편들고 후에 시어머니는 알아서 해결하기!


적고 나니 몇 가지라기에는 개수가 훌쩍 넘어가게 되었지만 둘 다 엇비슷한 월급에 맞벌이 조건이라면 아이 셋을 낳고 거의 전적으로 돌본 아내의 완승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많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도(그것이 만수르 형님 정도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은 매우 중노동(육체적, 정신적)을 요구하는 것이라서 아내를 배려하는 것이 남편으로서 좀 더 사랑하는 성숙한 자세 임일 것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자신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것은 초보 수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도 한때는 내가 좋은 남편이자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라고 자부하였지만 집안일과 양육에 참여할수록 이것은 너무도 힘든 일임을 깨달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아! 훈련소에서도 쉬는 시간은 지켜줬는데...'


그래, 그렇게 힘들었던 곳에서도 쉬는 시간은 쉬게 해 주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일에 어디 쉬는 시간이 있는가! 어디 아이가 부모의 컨디션 봐가며 다치고 아픈가!


나만 보고 시집온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며


적잖은 위로와 존경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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