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아빠! 오늘 치맥 콜?

사랑한다는 말 대신

by 영점오

첫째는 올해 열두 살이 되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노력한 결과 실제로 격이 없이 지내기도 하지만 가끔씩 요즘 초등학생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어 곤욕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아들과 멀어지는 것을 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들~ 그것밖에 못해? 아빠는 브롤(브롤 스타즈) 거의 안 하는데 내가 이겼네? 하하하!"

나는 아들을 놀리는 것이 재미있다. 나의 놀림에 아들은 다음과 같은 신조어로 반격한다.


"어쩔 tv~ 어쩔 냉장고~ 어쩔 전자레인지~"

처음 '어쩔'시리즈를 들었을 때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당황하였고 도대체 어떠한 의미에서 어쩔 뒤에 가전제품을 붙이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행어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도 이제 맞받아칠 수 있게 되었다.


"절레절레 전래동화~"

이러한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이 철딱서니 없어 보여도 사실 부자 사이에 끈끈한 우정이 생겨나는 중인 것이다. 무엇보다 자녀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자녀들 세대의 유행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는 모자라며 그저 친구가 되어 같이 놀면서 실제로 즐거워야 한다. 아들이 어렸을 때에는 귀여운 모습에 놀아주면서도 재미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아들이 크면서 얼굴이 변해가고 키가 크니 귀여운 맛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억지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관심이 없는 부분까지 다 관심 있는 척을 해서도 안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민감해서 본능적으로 지금 부모가 재미없지만 억지로 맞춰주는 것을 알고 언제부턴가 실망을 하게 된다. 결국에 부모보다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물론 아빠가 아무리 재미있는 친구가 되어주어도 실제 키가 비슷한 친구와는 당연히 차이가 나겠지만 그 친구가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친구가 없는 시간에 그 대신 쓸만한 존재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들의 본능에는 싸움과 경쟁에 대한 태생적인 관심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도 그랬고 아마 모르긴 해도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 먼 조상님까지 어릴 때 칼싸움 한번 안 해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나는 첫째가 태권도를 다니며 나에게 어린 시절에는 쓰지 못했던 발차기 기술을 쓰는 것을 보고 대견스럽기도 하면서 아직도 허술한 그 빈틈을 향해서 나의 손가락을 찔러 넣어 공격한다. 아들은 진지하게 나와 대련을 하지만 아빠(사실 노란띠밖에 따지 못했던)는 지금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최종 보스(게임의 마지막에 만나는)가 되어 아들을 농락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어릴 때는 아빠의 강한 장난에 울던 아들도 이제는 화를 내면서도 씩씩하게 견디는 모습이 기특하다.


아빠가 열두 살의 아들과 놀아주는 것은 태권도 대련을 가장한 몸싸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싸움, 스마트폰 게임, 큐브 빨리 맞히는 대결, 끝말잇기, 369, 배스킨라빈스 31, 1대 1 풋살, 배드민턴 등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아들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한다. 당연히 실수로(?) 아들의 기를 살려줄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지지 않고 아들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오만방자한 녀석도 겸손을 깨닫게... 되기는커녕 더 약이 올라 달려들지만 어쨌든 내가 재미있어하면서 놀아야 아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깐부가 되기 위해서는 승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아들들과 놀아줄 때 부모로서의 체면을 차리지 말자.


아들과 같은 나이로 되돌아가 놀아주지 말고 그냥 놀자~


내가 아들과 공감대가 없고 아들의 관심사가 재미없는 이유는 세대차이 이전에 본질적으로 아들을 현재의 나이에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아들보다 본인 위주의 가치관이 더 중요하다.


피곤하니 쉬어야 하고 개인 시간도 가져야 하는데... 또 아내 등살에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느낀다면 참 어려울 것이다. 특히 어린 아들은 너무 유치하고 나에게는 흥미가 돋지 않는 일에 항상 열심이다. 어쩌다 컨디션이 좋은 날 혼자노는 아들이 안쓰러워 놀아주려고 마음을 먹더라도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생각이 나고 아들과 놀아줄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나도 그랬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아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지금의 아버지와의 관계처럼 데면데면해서 대화조차 길게 하기 힘든 어색한 사이가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아내가 어느 날 지나가듯이 툭 던진 말이 나의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여보도 나중에 아버님처럼 되어도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그때부터인가 나를 많이 닮은 아들의 몸짓이, 말투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리고 더 늦어지기 전에...


다행히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아들은 아빠가 정말 친구라고 생각되는지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자주 있다. 물론 버릇없는 행동에는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하지만 잠시 시무룩할 뿐 금세 장난을 건다.


모든 것에는 일단 일장이 있다.

젊어서 아들과의 유대관계를 끈끈히 해놓으면 노후에 좋은 친구 하나가 생길 것이다.

반면 아들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때 즈음에 뒤늦게 다가선다 해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간극이 있어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다.


나중에 아들이랑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나 치맥을 곁들인 수다를 떠는 날들이 기다려진다.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도, 감사하다는 말도, 존경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다음과 같이.


"아빠! 오늘 치맥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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