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위 맨발 걷기.
맨발 걷기를 틈틈이 하고 있다. 아주 가끔 맨발로 짧은 구간의 산길도 걸어보고, 황톳길도 걸어 보았지만 일회성이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수술 후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입안도 계속 헐어 있고, 별 움직임이 없음에도 금세 지친다고 하니 권해 준 방법이다. 맨발 걷기로 효과를 본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다행히 마당이 있으니 실천은 어렵지 않았지만 흙길이 아닌 잔디밭이었다. 그래서인지 발바닥으로 따끔거리는 까칠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게다가 무성한 잔디 안에는 온갖 곤충과 벌레들이 성장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잔디가 무성하니 피해 갈 수도 없었다. 곤충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크려나 하겠지만 실은 잔디숲 안에 숨어있는 그들이 무서울 때도 있다. 특히 까맣게 기어 다니는 벌레들의 정체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잔디가 듬성한 구간만 맨발로 걷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잔디가 죽어가는지 흙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잔디에 길이 났다며 다른 곳에서 걸으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이유들을 말하며 계속 같은 자리에서 걷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하지만 잔디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기보다는 서로의 말들이 들리지 않았다. 한쪽은 아픈 사람이 먼저가 아닌 잔디가 죽을 것을 걱정하는 말들에 서운함을 이야기했고, 한쪽은 죽어가는 잔디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이야기했다.
다툼은 각자의 지질함을 알아챈 후에야 사과를 하며 멈췄다.
나: 내가 아픈 것보다 잔디가 더 중요하냐
남편: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잔디까지 죽어 그 자리에 풀들이 많이 나면 관리하기가 정말 힘들지 않냐
나는 마음과 대화의 접근법이 중요했고, 남편은 현상이 중요했다. 그리고 나는 회복에만 신경 쓰느라 남편의 고단함을 배려하지 못함을 미안해했고, 남편은 나의 현재 상태와 마음을 배려하지 못함을 미안해했다.
비가 와서 잔디가 더 무성해졌다. 그래도 발 다닥으로 전해오는 잔디의 까칠함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걸어보려 한다. 당연히 먼저 걷던 곳은 피해 다닐 것이다.(황톳길을 만들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