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귀리죽
많은 눈이 내린 탓에 멀리 보이는 산은 설산이 되어 있고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은 온통 하얗다. 떨어진 기온으로 어제 내린 눈이 꽁꽁 얼었다. 2024년 겨울 이맘때도 눈이 내렸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단지, 몹시도 추운 12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일, 남편과 나는 같은 날에 건강검진을 했고 똑같이 당뇨 전단계 적신호 진단을 받았다. 정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나와 재택을 하며 움직임이 적은 남편의 생활을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주로 함께 생활하며 같은 것을 먹는 우리가 똑같은 진단을 받은 것이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주 질병이 찾아오는 나로서는 당뇨까지 올 상황을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삶의 질이 뚝 떨어져 있었다. 낙담보다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운동과 식단이었다.
야채,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식사를 하면 혈당 스파이크를 줄일 수 있다는 건강 정보를 실천해 보기로 했다. 특히 아침 공복에 먹는 음식이 중요하다는 말에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은 야채샐러드, 삶은 계란, 콩귀리죽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걸었고 단식원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처럼 철저하게 음식을 조절했다. 그때는 다른 어떤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오히려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이 고마운 때였다.
건강검진을 받았던 12월 3일은 미루고 미루던 과제를 마쳤다고 안도를 하며 편안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10시 30분쯤이던가. 드라마를 보고 있던 우리는 건강검진 때문이었는지 다른 날 보다 많이 피곤해서 자려던 참이었다. 티브이를 끄고 일어나려는데 아이가 방에서 급하게 나오며 계엄선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켰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선포문을 읽고 있었다. 꿈인가, 현실인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1세기 2024년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장갑차와 무장한 군인들의 국회진입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맨몸으로 막아서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여과 없이 보여지고 있었다. 계엄해제가 되는 순간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날 밤은 역행하려는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공포의 밤이었다.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와 만나기 전까지는 거국적인 분노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라가 나아갈 길에 대한 대승적인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12월 13일에는 남편의 회사 송년모임이 예정된 날이었다. 그날은 송년 회식이기도 했지만, 재정적으로 몇 번의 고비가 있던 회사가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진행하던 외국 투자사의 투자가 확정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다녀오겠다고 나가는 남편과의 짧은 대화는 눅눅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별일 없겠지?” “응 별일 없겠지..” 불안한 눈빛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뒷모습을 배웅했다. 그리고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남편은 계엄직후 바로 투자사가 투자를 철회했다는 회사 소식을 들고 귀가했다. 1주일 후 회사는 잠정 중단되었고 남편은 직장을 잃었다. 회사의 운명을 책임 질 큰 프로젝트가 걸려 있었기에 투자철회는 타격이 컸었다. 그렇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던 그 말이 한동안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다. 불필요한 생각과 불안을 잠재우는 움직임과 손놀림은 장인의 손처럼 정교했고 숨을 고르며 느렸다. 먹을 만큼의 야채를 냉장실에서 꺼내어 물에 담가 놓고 냉동실에서 소분해 놓은 55그램 분량의 콩을 꺼낸다. 귀리 20그램을 물에 씻어 잠시 불리는 동안 콩을 두유제조기에 넣는다. 잠깐동안 불린 귀리를 넣은 후 물 250미리리터를 붓고 뚜껑을 닫는다. 메뉴에서 죽수프를 누른다. 가스불 위에서 오래 저어가며 만드는 수고를 두유제조기가 대신해주니 덜 귀찮아하며 매일 콩귀리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2인분 기준의 콩 55그램, 귀리 20그램, 물 250미리리터는 적당한 묽기와 점성으로 목 넘김을 부드럽게 해 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찾아낸 콩귀리죽의 레시피이다. 냄비에 야채 데칠 물과 계란 삶을 물을 붓고 가스불위에 올린다. 계란은 8분 30초면 먹기 좋은 반숙이 된다. 후드에서 나는 소음과 두유제조기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가라앉은 집안 공기에 묻힐 정도로 조용하다.
우리는 다시 살 길을 찾아야 하기에 가족회의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애써 웃었지만 모든 움직임은 나직하고 굼떴다. 먹는 행위조차도 느렸다. 그래서인지, 전에는 우적우적 한 번에 뒤섞어 씹으며 그 맛을 느끼기도 전에 꿀꺽 넘겨버린 야채들이었는데, 느꼈다 해도 굳이 되새김질하지 않던 맛 들이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음미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해야 했다. 조용히 깊게 각자의 시선으로, 식탁에 마주 앉아 말을 잃어가며 씹는 행위는 묘한 평온을 주었다. 매일 그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 하다보니 영혼 없이 움직이던 젓가락이 어느새 야채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집어내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말을 찾기 시작했다.
퍽퍽한 계란을 먹고 나면 소금을 살짝 뿌려 잘 저어준 콩귀리죽을 먹는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식감이 좋다. 까끌함이 남아 있긴 하지만 따뜻한 고소함과 부드러운 천연 단맛에 묻혀 버린다. 든든하고 푸근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에서 소식을 찾고 종일 뉴스를 보며 분통을 터트리던 때였다. 그런데 뜨끈한 죽을 먹는 순간은 심신이 안정이 되었다. 덥석덥석 퍼 먹는게 아까워 숟가락에 조금씩 떠서 먹는다. 점점 양이 줄어들면 늘 아쉬워한다. 방정맞은 소리가 날 정도로 싹싹 긁어먹어야 숟가락을 놓는다. 아쉬워서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욕심을 내면 그 맛을 잃어버릴 것 같아 하루에 딱 그 양만 먹는다.
매일이 조마조마했다. 계엄이 해제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던 희망이 점점 더 답답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종일 뉴스를 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빨리 나라가 안정이 되어야 회사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나라가 불안정하고 경제가 기우니 여기저기서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우스운 건 그런 걱정들과 한숨으로 잠이 들다가도 콩귀리죽을 먹을 생각에 아침을 기다리는 날들이 늘어났다.
어릴 때부터 가리지 않고 모든 콩을 좋아했다. 엄마는 주로 강낭콩을 넣고 밥을 해주셨는데 콩만 파먹는다고 야단을 들을 정도로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콩귀리죽에 들어가는 콩은 서리태이다. 1킬로를 사면 한 달 치정도의 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매일 아침 콩죽을 먹으며 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마당 한켠에 서리태를 심어 보기로 했다. 6월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양파를 캐고 난 한 평 반도 안 되는 자리에 콩을 심었다. 콩이 나오기는 할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틈만 있으면 콕콕 박아 놓았다.
야채를 소비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야채를 소량씩 먹다 보니 몇 번 먹다가 야채칸에서 썩혀 버리는 일이 줄었다. 양배추도 사놓고 안 먹다 보면 썩어서 통째로 버리기 일쑤였는데 작은 조각 하나까지도 알뜰히 먹게 되었다. 샐러드로 먹을 야채들을 사면서 이 상황에서 낭비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지만 버리지 않고 먹는 일이 오히려 건강도 챙기며 돈을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확장된 생각은 멈출 줄 몰랐다. 봄이 되면서 우리가 기존에 심었던 야채들보다 더 늘려 심어 보기로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텃밭을 만든다고 애를 썼었는데 수고만 더 하면 할 수 있는 일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전에는 게으름으로 그럭저럭이었다면 이제는 심어놓은 작물들에 더 정성을 들여 보기로 했다. 마당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동안은 불안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다. 파프리카, 오이, 상추류, 가지, 호박, 깻잎, 토마토, 미나리, 부추등 흙이 보이는 곳은 한 뼘 정도라도 모조리 심어버렸다.
11월 초쯤 콩을 수확했다. 심어놓고 관리를 하지도 않았는데 마른 콩깍지들이 빼곡했다. 같은 시간을 보내며 함께 비를 맞고 볕에 익어버린 검은콩은 우리 마음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수확한 콩은 콩귀리죽 한 달을 먹을 정도의 양이 나왔다. 말해 뭐 할 정도로 색이며 맛이 더 진했다. 들깨향이 나는 것처럼 입안 가득 고소한 향이 퍼졌다. 심고 나서 수확하기까지 봄을 지나 여름, 가을을 보냈건만 수확한 한 달 치 분량의 콩은 콩귀리죽으로 금세 다 먹었다.
이제는 심신의 빈곤을 채워주고 불안을 토닥여 주며 영혼을 감싸 안아주는 콩귀리죽을 망설임 없이 나의 소울푸드라고 말을 한다. 내가 받았던 위안을 지인들과도 나누고 싶어 맛을 보여 주곤 했다. 레시피를 공유해 달라는 말에 정성스럽게 정리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입맛이 달라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식감만으로도 온기가 채워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의 소망도 품어본다. 남편은 프로그램 일을 좋아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잠시 멈춘 그 회사에서 동료들과 정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가 그 바람을 꼭 이루기를. 혹시나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를. 여전히 지지부진한 내란 청산과정은 종종 체기를 올라오게 하지만 머지않아 끝이 보일 것이고, 곧 들려 올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