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한 날들을 지나다.

도전앞에 작아지던 나.

by 도연



20251223_212909.jpg 비가 내리는 날은 우산을 펼친다. 도연

냉동실에서 식빵을 꺼냈다. 얼린 빵은 대략 15분 정도 실온에 놔두면 말랑해진다. 통밀로 만든 식빵은 2센티정도 되는 두께로 자른 후 랩에 싸서 냉동실에 보관했었다. 커피를 마실 때면 한쪽씩 꺼내 먹곤 한다. 오래 씹어야 단맛이 우러나는 담백한 통밀식빵은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남편이 통밀식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에 건강검진을 했던 우리 부부는 당뇨 전단계라는 진단을 함께 받았다.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가장 조절이 힘들었던 것은 탄수화물을 끊는 일이었다. 특히 나는 빵순이, 떡순이라고 불릴 만큼 빵과 떡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만큼 먹기도 잘 먹었다. 달달한 팥고물이 들어간 단팥빵은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빵이었고 케이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소싯적에는 혼자 케이크 하나를 다 먹어버릴 정도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 듯 나는 빵집과 떡집을 보면 일단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러한 식습관은 당뇨적신호 진단을 받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기에 관리가 필요했다.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생각이란 것들이 감정과 얽혀 과부하를 일으키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넘치도록 차오르는 호기심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이기도 한다. 내가 하는 생각이란 것들은 때로는 몽실몽실하기도 해서 마음을 무장해제하게도 하지만, 종종 날카롭고 각이 져 있기도 해서 감정과 부딪히면 아프기도 하기 때문에 생각과 감정사이를 완충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마도 그것은 부드럽고 달달한 빵이었을 수도. 그래서 당떨어진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으면서 케이크, 빵, 떡등을 찾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명분을 만들어 본다.


이십여 년 전쯤일 것이다. 제빵사가 되겠다고 제과제빵학원에 등록을 한 적이 있었다.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나니 다시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워낙 빵을 좋아했고 가끔 아이를 먹이려고 간단한 빵이나 쿠키를 만들기도 해서인지 제과제빵을 공부하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특히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예쁘게 데코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제대로 배워 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어서 적잖이 고무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곧 국비지원으로 제과제빵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원에 등록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직업을 생각하도록 가능성에 힘을 실어 준 드라마가 있었다. 그 당시 한창 인기가 많았던 ‘내 이름은 김삼순’, 여자주인공의 직업은 파티시에였다. 드라마 덕후인 나는 한번 꽂힌 드라마는 수십 번을 반복해서 보곤 하는데 그때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런 드라마였다. 삼순이의 직업은 파티시에였는데 케이크와 디저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과제빵으로 묶어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바게트, 식빵, 빵류를 만드는 제빵사와 쿠키, 케이크류, 디저트등을 만드는 파티시에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어쨌든 드라마를 보며 파티시에라는 용어를 처음 알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모습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는 파티시에라는 다소 생소하고도 어려울 것 같은 전문직 용어를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현빈과 김선아의 연기력과 케미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인지 로코드라마의 단향은 느끼하지도 지나치게 달아서 물리지도 않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풍미가 깊고 고급스러운 케이크 같았다. 그녀는 외모를 가꾸는 일보다 케이크와 디저트를 만드는 일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데코를 하는 일에 더 자부심을 가졌다. 그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뭐라도 찾던 중이었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찾고 싶었는데 드라마에서 보여준 파티시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그림에 재주가 있으니 케이크 만들고 예쁘게 장식을 하는 게 잘 맞을 수도 있을 거라는 주변의 긍정적인 응원과 드라마에 동화된 난감한 자신감이 망설임을 줄여 주었다. 내가 만든 예쁜 케이크가 누군가의 선물이 되고, 어떤 이의 축하자리를 빛내 주고, 과하지 않은 달달한 맛으로 세상을 로코드라마로 만들어 버리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 꿈이 바사삭 깨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아닌 남편이 식빵을 만든다. 혈당 스파이크를 줄이기 위해 통밀가루로 식빵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혈당이 안정이 된 후에도 계속 만들고 있다. 빵중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정제밀가루가 아닌 통밀가루로, 설탕을 원래의 레시피보다 줄이는 걸로 타협을 했다. 많이 까끌거릴 줄 알았던 통밀식빵은 의외로 쫀득하고 담백하니 식감도 적당히 거칠었고 건강에도 좋았다. 초반 몇 번은 발효에 실패해서 떡인지 빵인지 모르는 비주얼로 난감한 맛이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식빵의 자태와 맛을 보여 준다. 내 담당은 조수, 뒷 설거지와 맛평가 그리고 고생했다는 한마디의 말이다. 빵을 만드는 일은 애저녁에 포기했다.


제과제빵 수업은 아주 잠깐 스치듯 들었다. 수업을 받았다기보다 체험을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제과제빵 수업을 듣는 일은 전액 국비인만큼 이 일을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한 사람들에게는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결혼과 출산을 하며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경력단절이 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더욱 그랬다. 개인이 지불할 비용 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무료 혜택인 만큼 관리는 철저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들어야 했고 출석률도 80프로 이상이어야만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양이는 호기심 때문에 죽는다(curiosity killed the cat)라는 영문 속담이 있다. 지나친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사람들을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 바로 나다. 위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전하는 무모함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장점은 도전이고 단점은 저지른 후 도망이다. 겁은 많은데 그런 호기심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고양이도 겁이 많으니 나도 전생에 겁 많고 호기심 많은 고양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으로 퉁친다. 실은 그 무모함이란 늘 절박함에서 나온 것 같다. 그때는 집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마냥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삼십대라는 나이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임신 전까지 일했던 영어학원 상담일을 계속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전망 좋아 보이는 제과제빵사가 꼭 되고 싶었다. 게다가 삼박자가 딱 딱 들어맞았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이미 전망과 가능성에 힘을 실었고 경비도 나라에서 지원해 주고 손재주가 있다고 주변에서도 응원을 해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늘 가장 중요한 것을 잊은 채 몸을 파도에 맡겨 버린다. 물을 무서워하는 줄도 모르고.


일주일 만에 못하겠다고 그만두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제빵을 하는데 손재주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제과제빵은 얼마만큼 정확하게 계량을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소량의 오차가 발효, 팽창, 식감, 모양, 맛을 크게 흔들어 성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섬세한 계량과 정밀한 공정 그리고 시간관리가 핵심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정밀한 계량과 시간엄수를 싫어했다. 싫어했다기보다 두려워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대형 빵 굽는 기계 앞에서는 긴장이 말도 못 했다. 생각해 보니 집에서 빵과 쿠키를 만들 때도 주로 남편이 계량을 했다. 나름의 절박함이 있으니 무조건 버티고 자격증 시험을 봐야 한다는 다짐은 겨우 일주일만을 버티게 했다. 쓸모없고 저렴한 절박함이었다.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으로 전이되던 날,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그만두었다. 제과제빵 자격증은 포기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낸 끝에 익숙한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긴 했지만 부끄러움을 지워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만둔 이유가 어느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계량에 좀 더 신경을 쓰고 기계를 다뤄보려는 의지와 노력 덕분에 그때보다는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내가 나를 몰랐던 시절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있었다. 적은 비용으로 사진수업을 받을 수 있으니 같이 들어보자는 지인의 권유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사진기 조작을 못해 그만두었고, 감각이 있으니 홈패션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도전을 했지만 미싱을 다뤄야 하는 수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멈췄었다. 집에서도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데다 고소득이란 말에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문화센터에 등록하고는 두 번만 수업을 듣고 나가지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고 라테 아트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리스타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원데이 클래스 체험을 했었지만 그것 또한 커피머신 조작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남편한테 핀잔을 듣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기계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인정해야만 했다. 기계조작 결핍의 인생은 많은 도전들을 걸러내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안착을 시켜주었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크게 남아 있다.


지금은 레시피가 있어야만 만들어 낼 수 있고, 정밀한 계량과 시간엄수가 적성에 딱 맞는 남편이 식빵을 만들고 커피를 로스팅하며 필요한 기계를 다룬다. 정반대의 둘이 만나 살면서 각자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써왔다. 지극히 T인 남자와 지독하게 F인 여자가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지낸다. 자신의 자리에서 잘 맞고 잘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것마저 접점을 찾는 일은 어려울 때도 많다. 그래도 서로가 가진 쓸모 있는 가치를 적절히 거래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내게 몇 번의 생을 더 살아낼 수 있도록 신이 기회를 준다면, 만지면 뭐든 황금이 되어버리는 미다스의 손처럼 모든 기계를 잘 다루는 손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축복이 저주로 변했던 미다스의 손처럼 비극적인 결말은 미리부터 예상하고 싶지 않다. 내 손에 쥔 떡보다 남의 손에 쥐어 있는 떡이 더 커 보이는 하찮은 인간이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축복과 장점을 무시한 채 남의 떡을 넘보는 중이다. 그렇다 해도 현생에서는 현재를 만족하며 살아내고 있다. 다만, 무모하지만 빛나는 도전 앞에서 무수히 작아지던 나를 이번 생에서만 만나고 싶을 뿐이다. 다음 생에서는 파티시에의 꿈을 다시 품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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