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이 사랑 통역되나요'의 도라미를 만나다
우족과 잡뼈가 들통에서 끓고 있다. 요양원에서 복무중인 아이가 우족과 잡뼈를 명절선물로 받아왔다. 그것들을 잘 손질한 후 찬물에 네 시간을 우린다. 충분히 핏물을 빼야 잡내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 한두 번 정도 더 물을 갈아준다. 가스불위에서는 천년만년 끓을 듯하여 마당에 있는 화덕 위에 올렸다. 장작이 덜 마르지는 않았을 텐데 들통 표면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불을 잘 조절해야 한다. 잡내와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팔팔 끓여낸 첫 물은 버리고 새 물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장작을 넣기 시작했다. 바깥은 연일 한파다. 남편은 바람까지 부니 볼이 부어오를 정도로 춥다고 했다. 우족과 잡뼈에서 국물이 뽀얗게 우러날 때까지 계속 장작을 넣는다. 오전부터 시작한 작업이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푹 고아진 사골은 진득하게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마치 젤리를 풀어놓은 것 같다. 뼈에 붙어있던 살점도 흐늘거리며 제 풀에 떨어졌다. 건져낸 뼈는 다음날 한번 더 끓이기로 했다. 사골을 우려내는 과정이 꽤나 번잡하고 오래 걸린다. 진하지만 깔끔한 국물을 얻어내기 위한 수고가 만만치 않다. 곡진한 과정을 거쳐 우러나온 진득한 국물만 보아도 벌써 몸이 건강해진 것 같지만, 무지 힘들다. 우리는 두 번은 못하겠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대파 송송 썰어 넣고 소금과 후춧가루 톡톡 뿌린 후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나니 그런 수고는 언제 했었나 싶다.
우려낸 사골국물을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비닐팩에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었다. 냉동실 빈 틈을 차지한 비닐팩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동안 잘 우려낸 행복을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불안이 찾아오는 순간마다 하나씩 꺼내어 먹는 것이다. 일상의 매 순간이 핑크빛이면 좋겠지만 삶은 그리 만만하거나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틈틈이, 때때로 그리고 자주 발견했을 나의 행복도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불안으로부터 밀려날 만큼 유약하기 때문에 늘 충전이 필요하다. 얼마큼 더 성숙한 삶으로 우려내야 불안이 파고 들 틈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행복을 찾는 것은 현재가 불안해서라고 한다.
요즘 빠져있는 OTT 드라마가 있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이다. 호진과 무희 그리고 무희의 망상인 도라미가 풀어내는 이야기다. 현실로 나온 망상 속 자아인 도라미는, 현실 자아인 무희가 사랑하는 호진에게 ‘안녕’을 말한다. 망상 속 자아가 현실로 나오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인 호진과 함께 하고 싶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과거를 호진이 알고 실망하여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무희는 호진을 떠나려 한다. 하지만 무희는 도라미를 통해 호진과 계속 만난다. 그것이 무희가 원하는 가장 간절한 내면이기 때문이다. 도라미는 무희의 망상과 불안이지만 결국 무희 자신이다. 피하려 하지만 머무르려 하고 머물고 싶지만 도망가려 한다. 무희가 행복하려면 불안요소를 없애야 한다고 도라미는 말한다. 불안이 없어지면 무희의 망상인 도라미도 사라질 수 있다. 도라미는 호진에게 무희의 행복을 위한다면 떠나라고 말한다. 행복과 불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림책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더미북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모은다. 공모전이 안되면 출판사에 투고도 해 볼 요량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꿈을 향해 꽤나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마음은 살얼음판이었다. 미지의 세계에 한걸음 들여놓은 발이 자꾸 중심을 잃었다.
20대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했다. 오로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숨을 쉬 듯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고 몸이 움직였다. 일하고 남는 시간과 번 돈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소비했다.
아깝지 않았다. 일기장과 노트, 홈페이지, 블로그등에 그림과 글을 남기며 나의 흔적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느슨하지만 멈추지 않았던 순간들이었고 그 과정들은 소중했다. 애를 쓰며 견디었던 시절은 귀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무기력해지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지기 시작했다. 좋아하고 동경하던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늦은 나이에 도전하는 것을 호기롭게 주변에 알렸다. 알려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당차게 걸어가려고 하는 길이 외로울 것이므로 나의 도전에 응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별 것 없는 오십 중반의 도전이 허세로 끝날 것 같아 불안했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 나 이런 사람이야”를 외쳐 버린 후라 돌이킬 수도 없었다. 뭐라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부담은 좋아서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간절함은 오히려 무리수가 되어 내 심장을 겨누었다.
나의 도라미는 내 마음이 평온을 찾으려면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예고 없이 툭툭 튀어나와 북토크에 데려다 놓고 그림책 공개강좌를 신청하게 하고 이야기를 만들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 그리고는 무모한 나의 도전을 비웃는다. 비웃지만 내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도 무희의 도라미처럼 가장 잘 알고 있다.
불안은 조급함에서 시작되었다. 여유를 부리던 마음은 결과물이 얼른 발등 위로 떨어지기를 소원했다. 조급함은 꾸준했던 나의 노력들을 하찮게 만들어버렸다. 찬바람을 맞아 가며 다리가 저리도록 쪼그려 앉아 몇 시간을 불 앞에서 애쓰던 수고를 허사로 만들고는 우려지지도 않은 사골국물을 먹겠다고 퍼내고 있다. 아니면, 장작을 마구 집어넣어 바닥부터 까맣게 태우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충분한 시간 동안 은근한 불로 공을 들이면서 우려내야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급하다.
도라미는 무희가 사랑하는 호진에게 무희를 대신해서 안녕을 말한다. 그리고는 무희에게
“ 너의 망상은 지나치게 이뻐서 슬픈 거야. 네가 하지 못하는 안녕을 해냈으니까 이제 부디 행복해져.”
나는 이제야 그림책을 만들겠다는 도전도 지나치게 이뻐서 슬픈 망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책 없는 허세가 불안했을 수도. 그러니 그렇게 도망가려고 애를 썼을 수도. 그럴 때마다 나의 도라미가 나왔을 수도. 꿈을 향한 도전은 망상과도 같다. 그렇다고 나의 망상에 안녕을 말하고는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설 자신은 없다. 더는 나이를 핑계 삼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빨리 증명해 내려고 무리수를 두었을 미성숙함은 지금의 나이를 부끄럽게 만든다. 지혜를 먹지 못하고 나이를 헛먹었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대부분의 드라마 결말이 그러하듯 무희는 도망가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결국 불안을 이겨내고야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다고 행복해지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사랑하는 꿈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지라도 미리 겁먹고 피하려는 것보다는 불완전한 도전이라도 해봐야 후회와 미련이 없을 거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그렇다면 일단 마음먹은 대로 앞만 보며 나아가는 수밖에.
종일 끓여야 진국을 맛볼 수 있는 사골 국물처럼 오랜 세월 동안 뭉근히 끓고 있는 나의 꿈이 뽀얗게 우려 지기를 기다린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좋다. 어떤 날은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집안일을 하느라 바삐 움직이면서도 생각은 사명처럼 한 곳으로 모아진다. 같은 관심사를 펼쳐놓고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언젠가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의 한계치가 드러나는 날이 올 것이고, ‘너의 재능은 별거 아니었구나’라고 하면서 스스로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현재의 불안마저 견디라고 토닥인다. 현재가 불안해서 행복을 찾는 거라면 더 더 적극적으로 행복을 갈구한다. 그러니 나의 꿈과 도전이 지나치게 이뻐서 슬픈 망상일지라도 현재를 불안해하지 말고 부디 행복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