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타임.

by 도연
커피타임. 도연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사이즈음에 커피를 마시곤 한다. 오전에 커피 한잔을 마셔주어야만 흐릿한 정신이 온전해짐을 느끼는 것은 나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카페인 각성은 짜릿하다. 그러니 마셔주는 수밖에 없다. 잔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부어 컵을 따뜻하게 해주는 동안 머신에서는 드르륵 위이이잉 경쾌한 소리를 내며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원두가 분쇄되며 사방으로 퍼지는 커피 향은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유혹과 중독의 그 어디쯤일 것이다.

십여 년 전 우리의 첫 등기권리증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둘째 언니가 이사선물로 필요한 것을 사라고 돈을 보내 주었다. 남편과 나는 이 돈으로 무엇을 살까 며칠을 고민을 했다. 딱히 새로 장만할 가전제품도 없고 이사하면서 소소하게 필요한 건 준비를 했기 때문에 좁은 집에 더 채울 물건은 없었다. 그러다가 커피머신을 사기로 했다. 사용하고 있던 커피 머신은 남편 회사에서 명절선물로 받은 것이었는데, 원두분쇄는 안되고 커피를 내릴 수만 있는 기계였다. 내가 조작하기에는 좀 복잡하다 보니 남편이 있을 때만 사용을 했었다. 그전에는 모카포트를 사용했었다.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쉽게 내릴 수 있는 도구였다. 수동그라인더에서 갈아진 커피가루를 넣은 모카포트를 가스불위에 올려놓고 약한 불에서 3~4분 정도 있으면 보글보글 에스프레소가 추출된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로 희석해서 마시면 맛도 향도 신선해서 그 귀찮은 과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감성을 마시는 것처럼 몽글몽글한 기분도 올라왔다. 하지만 감성은 감성일 뿐 반복되는 현실의 수고로움을 이기지는 못했다. 귀차니즘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상에서 명절선물을 선택해야 할 때 고민 없이 커피머신을 클릭했는데 반쪽짜리 성능은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하였으므로 문명의 이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가 욕심을 내어 보기로 했다. 성능 좋은 커피머신을 샀다.

처음부터 한약맛처럼 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커피의 시작은 달달한 믹스커피였다. 믹스커피도 내 몸에는 맞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할 때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믹스커피를 타오면 참지 못하고 탕비실로 갔다. 그 달달한 향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한잔을 마셔 버린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나면 어김없이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서 보통은 동료에게 한 모금만 남겨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럴 때면 “언니 언니가 타서 먹어. 양도 얼마 없는데..”하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고는 꼭 두세 모금 정도 남겨주었다. 장이 요동을 쳐서 곤혹스럽긴 해도 커피, 설탕, 프림이 진득하게 녹아든 커피는 온몸의 피로를 씻어주는 느낌이다. 커피를 마신 날은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이불을 몇 번이나 걷어찼었다. 가끔은 역류성식도염으로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카페인은 내 몸과 상극이었다. 그런데 커피에 중독이 되어버린 걸까. 지금은 장의 예민함도 잊을만하면 어쩌다 한 번씩 느껴지고 잠에도 크게 상관이 없게 되었다. 역류성 식도염을 몸에 달고 있어도 커피를 끊기가 어렵다. 중독이 맞다.


믹스커피에서 아메리카노로 갈아타기 시작한 것은 중년쯤부터였을 것이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정보들이 들려왔다. 구십 중반이 넘은 엄마가 지금껏 하루에 한두 잔씩 꼭 믹스커피를 진하게 타서 드시는 건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지만, 달달한 첫맛으로 홀리고 텁텁한 뒷맛으로 미련을 내려놓게 했던 믹스커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아이가 4학년, 11월. 거의 학기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결혼 전에 살던 곳이긴 했지만 결혼을 하고 가족과 함께 들어간 동네는 낯설었다. 고학년이 되어 전학을 한 아이는 마음이 더 고달팠을 것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다음 해 새 학기에 학교 도서관 봉사를 신청했다.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도서관 책도 정리하면서 함께 활동하는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도서부활동의 일부였던 빛그림공연을 하면서는 만나는 횟수도 잦았고 그러다 보니 작은 동네에서 서로 집을 오가는 일들도 빈번했다. 수동으로 커피를 내려 마실 때에도 자주 커피를 마시러 오곤 했지만 커피머신을 들여놓고부터는 집이 카페가 되었다. 거실도 여럿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남편은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재택근무를 했지만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를 내려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니 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넉살이 없는 편이다. 그나마 내가 아이의 빠른 적응을 위해 엄마들과의 사교에 발을 먼저 들이다 보니 조금 더 나은 것일 뿐, 오십 보 백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머스러운 이야기를 해도 진지하게 풀어놓는 타입이다. 이사오기 전 동네에서는 집에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웬만해서 부르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그만둔 후에도 아이의 절친 엄마 말고는 왕래가 없었다. 다세대 13평 집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내보일 마음도 없었다. 우리 가족만이 잘 버티고 잘 살아내기를 바라던 때이기도 했다.

이사 후 처음부터 적응을 잘한 것은 아니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 중에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후유증으로 혈관성 치매가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1년 반정도 지난 후였다. 새로 이사할 집이 홀로 계신 아버님 집과 30분 거리이기도 해서 보살펴 드리기 위해 서둘러 이사를 계획한 거였는데 이사를 하기도 전에 아버님이 쓰러지신 거였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들어가게 된 집이 우리에게 안겨준 설렘은 아주 잠시였다. 이사한 이듬해 1월에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고 4월에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슬픔을 감당하기에 나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새 학기를 시작하는 아이도 돌봐야 했는데 내 마음 추스를 힘도 나지 않았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도서부 봉사였다. 봉사를 하는 틈틈이 슬픔은 차츰 묻혀 갔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봉사가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 집이 커피맛집으로 알려진 터라 인사는 “커피 마시러 갈게요” 라든가 “커피 드시러 오세요” 가 되었다. 커피가 관계를 유연하게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톡톡이 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커피에 깊이 빠져들었다. 분쇄된 가루를 사서 내려 마시던 것을 직접 그라인더에 갈아서 신선한 향을 음미했다. 이웃들이 방문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꿀 먹은 사람처럼 말이 적던 남편도 자연스럽게 말도 많아졌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커피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상대의 관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는 늘 상기되어 있었다. 커피 맛이 좋다는 것은 커피의 쓴 첫맛이 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것을 함께 즐겼던 이웃들은 맥락 없는 커피이야기를 신나게 들어주었다. 커피는 까칠할 만큼 낯가림이 심한 부부에게 윤활유가 되어 준 것이다.

그 커피머신이 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위이잉 소리를 내며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딱 한번 부품을 교체한 것뿐이다. 단지, 달라진 것은 주택으로 이사 오고부터 커피를 직접 로스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번 원두를 사는 일은 가계에 부담이 되었다. 손님이 여럿이 올 때는 원두가 금세 동이 나 버렸다. 남편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팬에 원두를 볶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며 배웠는데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신선하게 볶아진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 마당에서 쪼그려 앉아 커피를 볶던 남편은 결국 당근마켓에 저렴하게 나온 상태 좋은 로스팅기를 샀다. 아파트의 급매물과도 같았다. 얼른 처리해야 하는 이유로 사양 좋은 가성비 최고의 로스팅기계를 살 수 있었다.

생두를 구입해서 소량씩 로스팅을 해서 마시니 커피에 소비하는 돈이 줄었다. 게다가 로스팅한 숙성이 덜 된 가벼운 맛의 1일 차부터 숙성되어 묵직하고 깊은 10일 차까지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다행히 부부는 커피 취향이 같아서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로스팅하는 원두의 생산지는 에티오피아이다. 여전히 지인들은 무한리필이 최대 장점인 우리 집으로 커피를 마시러 온다. 맛 좋은 커피와 베이커리 그리고 전망 좋은 카페들이 많아져서 집을 찾는 지인들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언제든 활짝 열려 있다. 커피 향과 이야기로 채워지는 공간 속의 우리는 침묵에도 소음에도 너그러워지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로스팅한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분쇄해서 드립백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공장을 돌린다고 말한다. 남편이 14그램씩 드립백 거름망에 넣고 실링기로 입구를 완벽히 봉해서 내게 넘겨주는 동안 나는 겉봉투에 원두의 이름과 로스팅한 날짜를 쓴다. 겉 봉투 안에 드립백을 하나씩 넣어 입구를 틈 없이 눌러주면 끝. 무한 반복해서 만든 드립백은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손님들이 오면 선물로 주었다. 그런 열정도 나이가 드니 조금 시들해졌지만 언제든 커피를 마시러 온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중년부부의 오전 커피타임은 일상과 화해시켜 주는 시간이다. 이웃과 좀 뜸할 때 “커피 마시러 와” “커피 마시러 갈게” 한마디면 집으로 놀러 오라는 약속을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다. 살아갈 일이 암담하고 빛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도 쓰기도, 시큼하기도, 달기도, 고소하기도 한 커피를 마시며 침묵을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커피에 전문가도 아니다. 커피를 업으로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커피양도 한잔씩 뿐이다. 넘치지도 덜하지도 않은 커피사랑은 퍽퍽한 일상으로 타인들과 거리를 두었던 우리를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안내해 주었다.

‘커피루왁’. 커피가 맛있어지라고 주문을 외우며 커피를 내렸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영화는 카모메 식당이다. 루왁이라는 작은 동물(사향고양이)은 커피 중에 단 것만 골라 먹는데 그것이 배 속에서 정제되어 똥으로 나오는 걸 커피원두로 쓴단다. 그래서 루왁이 남획되었고 그 수가 줄어서 귀한 커피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격도 일반 원두값보다 몇 배가 비싸다. 감히 원두를 사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불리어진 이름이 환상의 커피라고 한다. 카모메 식당의 주인은 커피가 맛있게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커피를 드립 하기 전에 ‘커피루왁’이라고 배운 대로 주문을 말한다. 나는 드립 커피로 마시면 카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드립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다. 느리게 걸러지는 드립커피가 카페인 함량이 제일 많다고 전문가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드립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손떨림, 그리고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지 못해 아쉽지만 손을 떨게 하면서까지 마실 수는 없으므로 기계에 의존하며 마신다. 우리에게 소중한 관계들을 이어가게 해 준 커피머신이 앞으로 십 년도 더 끄덕 없이 커피를 내려 주기를 바란다.


버튼을 누르며 ‘커피 루왁’ 커피야 맛있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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