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우리의 마음을 느끼고 있듯, 사람들의 마음도 들여다 본다
#1분세바시 #1분묵상 #발걸음의깊이만큼
자연도 우리의 마음을 느끼고 있듯, 사람들의 마음도 들여다 본다.
안타까운 것은,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의 기도가 절로 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곁에서 말로 해주지만 스스로 그 이유와 가치를 알아야 간절해 짐을 늘 느낀다.
기차에 오르고 내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인다.
그만큼 뭐든지 옛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진득함”이 묻어나야 한다.
차가울 때는 차가워야 주변의 방만함을 긴장시킬 수 있고, 방종의 길을 막아줄 수 있다.
그러나 “개입”이라는 이 단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며 또 싫어한다.
“우리”라는 말보다 “나”, “내 것”이 소중함이 강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까?
과거는 공동체 중심의 사고였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국가의 어려움이 닥치면 교회에서는 “주님 도와 주소서”의 고백이 멈추지를 않았다.
“어떻게 해 주세요.”, “어떻게 좀 바꾸어 주세요”가 없었다.
#도와주세요 뿐이었다.
그만큼 간절했기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이심전심 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어려움이 내 어려움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나게 춤을 추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의 신을 만들어서… 하나님은 격분하셨고 모세는 내려와 십계명을 던졌다.
이 때 하나님의 태도는 변하셨다.
더 이상 “내 백성”, “내 군사” 가 아니었다.
[모세야 네가 애굽에서 이끌어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고 화를 내셨다.
#책임전가 가 아니다.
지도자로서 목숨 걸고 그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지켜야 할 수 많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자리가 지도자였기에 모세에게 책망을 하신 것이다.
아이러니 할 수밖에 없지만, 이처럼 “직임”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진실한 리더의 삶을 기다려 본다.
그 활력 넘치던 꽃이 불과 3일 사이에 마음을 읽었는지 기운을 잃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