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세우거나 무너 뜨리는 일은 너무나 싑다
프란시스코 프라디야 오르티즈[Doña Juana la Loca. FRANCISCO PRADILLA ORTIZ. 광녀 후아나. 1877. P0 S00]
두 개의 그림을 그렸지만, 색채감이 서로 다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은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의 그림이다. 28세에 죽은 펠리페 1세는 이세별 여왕의 딸 후아나와 결혼함으로써 장차 스페인 왕국의 왕위 계승 1순위였다. 하지만 그 준비를 하며 작은 공화국에서 왕이 된 지 2년도 안 되어 죽게 된다. 결국, 그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의 시신을 북쪽 끝 부르고스로부터 남쪽 끝 그라나다까지 무려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관을 옮긴다. 들려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후아나는 의부증에 걸렸다고 하지만 사실 그 말보다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된 자의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 후아나라는 이름의 의미는 참으로 유럽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남편이 죽고 9월부터 시작해서 다음 해 5월까지 무려 8개월의 관을 이동하면서 절대로 수녀원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후아나가 이렇게 한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유였다. 자신의 어머니가 묻혀 계시는 그라나다 대성당 옆 왕실 예배당에 묻히게 하려 했다.
하지만 그라나다 도착 후 2년 뒤 아버지 페르난도는 후아나는 감옥 속에 갇히게 되었고, 아들 카를로스 5세는 이런 어머니를 방치시켰다. 결국, 76(1479~1555)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깊은 감옥 속에서 차갑게 죽음을 맞이했다. 부모도 자식도 그 누구도 곁에 없이 쓸쓸히 말이다. 후에 남편의 옆에 묻히기는 했지만, 정말 후아나의 마음을 아는 이는 없다.
이 그림은 당시 로마와 스페인 아카데미의 이사였으며 프라도 미술관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던 프라디야가 광녀 후아나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남편의 관을 지그시 바라보는 후아나의 모습 속에 미친 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를 로살레스는 주변에서 지루함으로 상황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표현함으로 후아나의 마음의 상태를 더욱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