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2세의 화려함
스페인 절대권력 엘 에스꼬리알
펠리페2세의 화려함
스페인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언제였을까?
1세기 로마의 침입 후 관계수로 시설을 얻고
3세기 서고트족의 침입 후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711년 이후 아랍의 침입 후 금은세공기술, 올리브, 포도 등 많은 것을 얻었다.
무려 1,500년간을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492년이겠지. 보압딜 왕조가 마지막으로 그라나다에서 7층탑 위에서 이세벨에게 열쇠를 넘긴 시점이 그 시기니 말이다(가이드하면서 대부분 년도와 월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략 1800년쯤이라거나 몇 세기라고 하는데... 물론 장단점이 있다. 정확한 것을 원하시는 분도 있고 정확하게 말하면 오히려 기억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분들도 계시니... ㅎㅎㅎ 참으로 가이드가 어렵다. 소신대로 하자니 한번 보는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어느 정도 기억에 남게 해드리려 그림을 보여드리며 온갖 모습을 보이지만 결론은 늘 동일하다. 사진 외에는 남는 게 없다는 사실)
이렇게 억울함을 간직했던 스페인에게 화려한 꽃이 핀다. 바로 #합스부르크 왕조가 시작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기도 했던 #카를로스5세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1세라고 호칭하지만, 왕보다 황제가 더 높지 않은가... 그래서 카를로스5세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때 북유럽을 호령하던 시기가 찾아온다. 이때 스페인은 정말 날개를 달고 서러움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시기를 얻는다. 그래서일까? #톨레도 입구 #비사그라문과 #세고비아 전쟁박물관 앞 벽면을 올려다보면 #카를로스5세를 상징하는 쌍머리 독수리가 있다.
이 카를로스5세의 아들 #펠리페2세가 대를 이어 강력한 절대군주의 시기를 유지하지만 많은 변화를 낳는다. 아버지는 직접 한 나라 한 나라를 찾아다니며 다스렸지만, 아버지때보다 더 넓어져가는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부족해서였을까? 궁에서 서류로 신하를 보내서 다스리는 제도를 했으니 말이다.
오늘 들려보려는 곳은 #산로렌소 #엘에스꼬리알 이라는 명칭이다.
스페인에서 그림들을 보면 많은 특징들이 있는데, 기독교를 믿다가 순교한 자들의 기념일이 참으로 많다.
세고비아에서 보게 되는 #루치아(눈이 뽑혀 죽고) #아가타(유방이 잘려서 죽고) #세바스티안(로마장교면서 기독교친구를 변호하다 화살에 맞았으나 살았다가 다시 참수형으로 죽는다) 등 많은 이들이 있다.
절대적인 믿음을 벗어나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이곳 엘 에스꼬리알은 로렌소 성인을 기리는 곳이다. 이 분은 어떻게 죽었느냐? 엘 에스꼬리알의 형태를 바라보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우선 이 장소를 지은 사람은 #펠리페2세다. 이탈리아를 놓고 프랑스 앙리와 격전을 벌이다가 승리하게 되고 승리의 기념을 남기기 위해 또 자신이 과거 약속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왕실 수도원 개념으로 짓는 것을 명하는데, 그것을 지을 때 로렌소 성인에게 바치기 위해 지었기에 그 분이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는 모형으로 지었다.
바로 위에서 보면 #석쇠 모양이다. 맞다. 고기굽는 석쇠 말이다.
인간을 석쇠에 굽는 잔인한 벌을 가했다니... 할 말이 없다. 아무튼 그 석쇠에 구워지며서까지도 기독교를 부인하지 않았다하니 오늘날 뉴스를 접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부에 입장을 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절대 사진촬영 불가다. 그럼 여기 사진은? 물론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과 엘 에스꼬리알 수도원에서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을 활용해서 글을 남긴다. 물론 저작권에 저촉이 될 경우 사진은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당분간 사진을 올려 놓았다.
표를 10유로에 구입하기 전에 검색대를 먼저 통과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왕실 수도원으로 사용중이기 때문이고, 여기가 스페인 왕실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표를 사고 가방은 잠시 왼쪽으로가면 맞기는 곳이 있다. 맞기고 출발하자. 사진촬영 절대 불가... 핸드폰 촬영도 절대 불가다. 괜히 "동양인들은 원래 저런가봐!!!"라는 소리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지킬 것은 지키자.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랑은 아닌 것 같다.
들어가면 저렇게 실내 프레스코화가 있는 벽면을 따라 여러 곳을 거닐게 된다. 방향이 안내가 되어 있으니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일단 중앙 광장에서 성당을 먼저 보게 되고 그 뒤 2층의 도서실(영화에 나올법한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본인들의 갤러리에도 도서관은 공개하지 않는데... 들어가보면 정말 책을 읽고 싶어질정도다.)을 거쳐 마지막 무덤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곧곧에 안내원겸 경찰이 있으니 제발 조심하자. 사진 촬영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와서 엽서나 서점에서 책자를 사서 나중에 글을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림의 중심 #수태고지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사진을 찍도록 허락했다.
계단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말이다. 위에서 내려보며는 못 찍게 한다.
천장에서 오로지 위쪽을 향해서만...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제일 많다.
왕실 예배당!!! 성가대실!!!
이 방이 특히 멋스러웠던 것은 천장의 프레스코화다.
다른 지역을 다 방문해보았지만, 정말 화려한 프레스코화를 올려다보는 그 행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엘 에스꼬리알이다. 개인적으로는 코르도바보다 세비야보다 그라나다보다 더 아름답고 멋스러웠다.
왕실 보물실!!!
여기는 보여주지 않는 공간이다.
아쉽지만, 갤러리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드리드 왕궁에서 보는 것으로 패스해야 할 듯 하다.
몇 차례 방문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보물실은 들어가보지를 못했다 ㅠㅠㅠㅠ
화려한 예배실 프레스코화는 달리 내부는 상당히 정숙하고 단아한 느낌이랄까? 12제자의 특징들이 너무 자세히 표현된 그림들을 보며 과거 기독교의 성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다.
특히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하다. #마우리시오의순교 #엘그레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때문에 결국 #펠리페2세에게 최종 눈도장을 찍힌 결과를 얻었다는 풍문이다. 사실 이 그림 이후 톨레도에 돌아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작품생활을 하며 궁중화가로서 점점 멀어진다.
그 이유는 뻔하다. 첫 그림 #엘에스폴리오(톨레도대성당)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그리더니 이 그림 역시 #순교라는 주제로 펠리페2세가 주문했는데, 순교의 장면은 저 왼쪽 뒤편에 있고 앞에 강조된 것은 전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었다면 아마도 이곳 엘 에스꼬리알에는 엘 그레코의 그림으로 가득차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고집스러움은 성공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집스러움은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사라지기도 하나보다.
무덤가에 붙어 있는 왕실의 문양!!!
2층 도서관을 지나면 기나긴 여행이 무덤가의 여행이다. 과거 수많은 왕조의 왕자들과 여왕들의 무덤들부터 시작해 마지막 역대 왕들의 무덤까지 긴 행렬이 이어진다.
다행히 중간에 쉴 공간이 나온다. 서점 겸 선물 코너... 숨을 돌리고 계속 무덤가를 거닐어야 한다.
이곳이 종착지다.
여기는 과거 왕들의 무덤이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금 할아버지 국와 #후안카를로스국왕 아버지까지 다 묻혔다고 한다. #판테온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들어가보니 #카를로스5세도 #페르난도왕도 #펠리페2세도 다 있다.
스페인 역대 왕들의 화려한 무덤이라 그런지 보이는 것처럼 전부 #황금이다. 입구에 있던 원형의 왕자들과 왕비들의 무덤과는 역시 다르다.
아참!!!
한 가지... 무덤가로 가기 전에 하나 더 얻는 것이 있다.
바로 유명화가들의 그림이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화가로는 #카라바조를 불리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이 사람이다. 그림이 잔인할 정도로 음영에 의해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는데, 특히 세례요한의 목을 잘려 있는 쟁반을 들고 있는 살로메, 골리앗의 목을 자른 후 정리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 특히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의 그림은 정말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너무 사실적인 그림에 치중한 놀라운 화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호세 리베라다.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몇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미술관을 들어가는 정면에 이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삼위일체!!!
엘 그레코의 삼위일체와는 사뭇 다르다. 엘 그레코의 삼위일체의 문제점은 예수님이 너무 건장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베라의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카라바조를 보는 듯 하면서도 아닌 듯 한 느낌이 든다. 카라바조의 선명함이 리베라에게는 조금 흐린 듯한 느낌으로 무마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백내장을 앓고 있는 듯 그림의 섬세함이 보이는 듯 하면서 흐릿함으로 남는다. 스승의 것을 따라하되 자신의 것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어서 그럴까? 아무튼 리베라의 여러 그림을 보면 왠지 모르게 초라함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많다.
엘 그레코는 성부의 모자 삼중관을 옆 모습으로 바꾸어 쓰게 그렸는데, 리베라는 피라미드처럼 흐릇한 삼각형을 머리에 남겨 놓았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후대에 나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