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순수함의 외침을 자유로이 들을 날을 기대하며
그림의 순수함을 찾아야 밝아질 세상
서영석(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프라도 미술관 이야기 저자
티센 미술관 이야기 저자
과거나 현재나 반복되는 한 가지는 그림을 통한 인간의 감정 표현을 정치와 문화가 이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작금의 만화대회 고등학생 작품에 대해 칭찬이 아닌 비판 일색의 정치나 국회의 전시회 등에서 순수 창작 미술이 한 사람의 마음에 거슬림으로 인한 거부와 퇴출 그리고 갖은 압박의 시대 속에서 과거와의 한 가지 공통점을 찾게 된다.
그림을 통해 문맹 시대에 사람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의 인식을 심어주려던 기득권층에 의해 형성된 그림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이미 사라진 사람을 소환하기도 하고 때로는 매도 시킴으로 사장 시켜버리는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림의 순수성과 순수 미술의 부재라는 말은 오히려 상황에 대한 모순을 극대화 시켜가는 문화의 한 면이라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가득할 뿐이다.
히틀러에 의해 퇴폐미술이라는 미명 하에 가슴 아픔을 당했던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이 그려낸 그의 아내의 모습(Quappi con suéter rosa. 1932~1934. Thyssen Bornemisza. R.45)이나 프랑스 노동자들을 그리며 사회적 모순과 상황을 잘 표현한 벤 샨(ben shahn. French Workers. 1942. Thyssen Bornemisza. R.45)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시대적 아픔과 그 속에서 화가가 그려내며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만나게 된다.
특히, 고흐(van gogh)의 그림 중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Van Gogh Museum, Amsterdam)의 모습과 베크만의 가족 그림(Max Beckmann Family Picture Frankfurt 1920(MoMA. R.514)의 공통점을 바라보며 시대의 삶을 읽게 되는 것이 바로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그 순수함의 의미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가족의 의미와 현대화되어도 그리고 더 나아진 삶이 되어도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이라는 주제는 변함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상황이 아닌 그 마음의 자세라는 것을 화가들은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르네상스를 맞이한 스페인의 미술사 속에서 초기의 르네상스(시에나 지역의 미술)가 아닌 플랑드르의 미술이 접촉을 먼저 하게 된 이유는 1492년 에스파냐의 탄생 때문일 것이다. 왕정체제가 세워지면서 급속하게 거대 제국으로 성장하며 제2대 해양제국을 건설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들의 치적을 그림을 통해 알리기 위해 홍보하는데 적극적이었던 당시의 문화와 화가들의 욕구가 맞아 떨어진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엘 그레코가 펠리페 2세의 르네상스화하고자 하는 스페인문화에 매력을 느껴 발길을 옮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었던 것처럼 문화예술은 끊임없는 순환의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하지만 스페인 초기의 역사를 보면, 플란데스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이세벨 여왕의 치적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을 하게 된다. 가톨릭의 이세벨이라는 이름을 빛나게 하고 이슬람과의 800년 싸움을 통해 승리한 스페인의 외부적 요인 뿐 아니라, 신앙간의 대립에서 승리하게 됨을 보이고자 원했던 그의 마음을 화가들은 플랑드르의 세밀화를 통해 극명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화려하게 드러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하는데 화가들의 힘을 빌렸다(The Crucifixion. FLANDES, JUAN DE. 1509~1519. MUSEO DEL PRADO R.57B). 특히, 스페인의 도미니크 수도사의 업적을 활용함으로 자신들의 이미지 구축과 함께 다양한 종교적 정책을 추진하는데 그림을 페드로 베루게테(Saint Dominic and the Albigensians. 1491~1499. MUSEO DEL PRADO. R.57B)의 그림을 통해 보여짐도 전혀 어색함이 아니었다. 이처럼 화가 스스로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한 흔적보다는 스페인 왕실의 정치적 입지 구축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림으로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미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플랑드르 미술을 이야기할 때 얀 반 에이크나 반 데르 웨이든을 언급하지만, 그보다 많은 신앙적 시사점을 전달한 화가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스페인에서는 el bosco로 불림)임을 우리는 보게 된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의 전용관을 통해 보는 보스의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일관성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초현실주의의 놀라움이 돋보이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이 그림을 이해하는 이들은 없었다. 아니 이 그림을 바라보는 대상들이 이 그림 자체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 자체가 이 고발적인 그림에 수긍할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Triptych. 1490~1500. MUSEO DEL PRADO. R.56A)’과 ‘건초 수레(The Haywain Triptych. 1512~1515. MUSEO DEL PRADO. R.56A)’는 화가들이 시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떻게 그 방향성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교훈을 담고 있다. 다만, 이 그 교훈을 수용하지 못하고 비평이 아닌 판단과 거부로 그림을 왜곡시킴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는 아픔을 많이 보게 된다.
화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작품 속에 그 시대상을 담아 수많은 이들에게 가슴으로 전달하고 싶어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수용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림을 그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게 해석을 하기에 그림이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함의 의미는 퇴색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게 된다.
화가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서도 따라가기 버겁고, 너무 강압적인 상황에 순응하며 나아가는 것 역시 그림의 본질을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이야기 하고 싶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중 특히, 역사화인 “브레다 함락(The Surrender of Breda. 1635. MUSEO DEL PRADO. R.9A)”을 통해서 역사의식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보여준다. 승자의 승리의 원칙은 단순하다. 패전국보다 강하고 힘있게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 화가들의 기법이었다. 하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브레다함락의 장면을 놓고 깊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승자의 관용이었다. 이긴 자의 당당함보다는 패전국의 아픔과 그들을 보듬는 승자의 아량을 돋보이게 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그 해석은 결과적으로 종교전쟁이자 80년전쟁, 30년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과정에서 양국 모두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한 그림이 되었다. 화가 스스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고 누가 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판단하고 감싸 안고 나아갈 진정한 용기가 있느냐를 보여준 이 그림은 최고의 역사화로 손꼽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프란스시코 데 고야가 보여주려 했던 1808년 5월 2일(The 2nd of May 1808 in Madrid
or “The Fight against the Mamelukes”. 1814. MUSEO DEL PRADO. R.64)과 5월 3일(The 3rd of May 1808 in Madrid, or “The Executions”. 1814. MUSEO DEL PRADO. R.64)의 그림을 통해서 전쟁의 잔혹성과 그것을 통한 우울함과 낙심의 한계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열망은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이 되었다. 피카소를 통해 1808년 5월 3일은 리메이크 되어 한국에서의 학살(Pablo Picasso. Vallauris, 18 janvier 1951. Musée national Picasso)을 통해 당시 중국과 일본만 알던 아시아에 작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로 인해 한국전쟁의 해결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한 것도 이 그림이 발단이 되었음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은 사실이다. 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비평을 하는 것 역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다만,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 순수한 미술의 세계를 왜곡 시키는 것만은 멈추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는 자의 몫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는 순수 미술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그 그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들의 몫이다. 나와 맞지 않는 의견을 내었다고 비평은 할 수 있으나, 비판은 그 그림의 전달력을 약화 시킬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시대적 아픔을 가장 극명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낸 피카소의 “게르니카(Pablo Picasso. Guernica. 1937. MUSEO REINA SOFIA. R.205.10)”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미술의 방향성은 순수미술의 세계이다. 그림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미래에 보여주는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물론, 1800년대 카메라의 발달 이후 그림의 방향성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어떤 미술일지라도 우리에게 화가들이 말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미래에 어떻게 이루어질 지를 보여주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지도를 인의적인 힘으로 왜곡하도록 한다면 어찌 온전한 도로가 나오겠는가?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유와 그림을 통한 깊은 고뇌와 갈등 그리고 해법의 논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 사고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것 역시 그림을 바라보는 자의 역할이요 책임이요 의무이다. 자신과 배치되는 생각을 가졌다고 무조건적 비판과 정죄는 순수한 미술을 막는 길이요 결국 사회적 어두움만 더욱 극명해지는 현실을 낳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넓게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그림의 테두리 안에 머물게 되는 종교의 수많은 이야기를 이끄는 지도자들 역시 편협되고 왜곡된 시선의 지식적 전달이 아닌 자신의 삶 속에서 녹아져 내린 화가와 같은 순수함의 마음을 회복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