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12월 성탄은 안녕하실까요?

성모잉태를 바라보며…

by jairo

2023년도 12월 성탄은 안녕하실까요?


서영석 작가

사색의향기 마드리드지부장

예술목회연구원

스페인 마드리드 미술관 작가

프라도에서 웃어요 출간 (2권 집필 중)

티센에서 웃어요 출간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여행 가이드


여행자라면, 그 해당 나라의 핵심 미술관을 찾는다. 그래야 그 나라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떠한 문화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집중력이 폭발할 정도로 문제가 없어야했다.


그 당시 아카데미아가 그러했으니 무얼 바라겠는가? 그런데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즉 예수의 생일을 맞이하는 세상의 풍습은 이제 변해가고 있다.


아기 예수 중심이던 세상이 저작권료라는 이름 아래 음악도 사라지고 아기 예수의 틴생의 의미도 변해가고 있다. 다변화 사회 속에서 결국, 사람들은 종교의 다인정 사회 속에서 예수 탄생의 의미마저 다변화 사회에 맞추어야 한다며 변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인간의 탄생을 짐승의 탄생처럼 부르던 수태라는 개념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거룩함의

이미지가 아닌 인간의 탄생보다 더 격하시키려는 본성이 결국 탄생의 신비 외에도 그

탄생의 의미까지 희석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보려던 관점의

르네상스가 오늘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안개와 같은 스푸마토를 실현시키고 말았다.


성가족

그 출발부터가 남달랐고, 이기주의적인 사고가 아닌 이타주의적 사고로 시작되어진 철저하게 타자 중심적 삶의 가치를 외친 예수의 3년간은 오늘날 누구에게도 귀담아 들을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 탄생과 삶의 이야기는 타 종교의 탄생과 같은 위차로 해석되어지면서 거리타분한 이야기로 정리되어가고 있디. 본질이 중요한 세상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내 인생에 이익이 되는 해석을 하면 된 것이고,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고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해 가는 세상이 되었다.


고민하던 그 시대 이야기는 라떼가 되어 버렸다. 요한이 왜 할아버지로 그려졌는지, 예수가 왜 50대의

아저씨로 그려졌었는지, 왜 갑자기 성모 마리아가 아줌마가 되어 아웃사이더 위치가 되었는지 관심이

없다. 신이 우리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그저 그리스로마의 한 신화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성가족의 요한이 아닌 쌍둥이 예수로 불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보았느냐에 초점을 밎추는

것이 아닌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노인이었던 요셉이 30대 중반으로 변하며 가정을 지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10대 후반의 소녀가 중년의 여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서로간의 위치가 바뀐 것은 삶의 질이 달라져 바라보려는 시선에 대한 초점이 지극히 나의 중심적이 되었기에 그림이 하는 본연의 위치로 회귀해야 삶의 해석이 달라질수 있음을 본다.


이제는 예수가 아니어도 대체 종교가 존재하게 되었고, 대체가용상품이 등징했다는

듯이 다문화, 다종교 속에서 “꼭! 그래야 하는가”의 해석이 세상을 지배하며 사람들의 미음에

혼란을 주고 있다.


마음이 안타까운 건, 이제 성화도 아닌 종교화도 아닌 일반 그림이 되어버린 예수의 이야기를 보며 왠지

입가의 쓸쓸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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