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 해변에서 처형되는 토리호스장군과 그의 동료들
[전문가 칼럼] “신념”과 “현실”의 왜곡 현상
안토니오 히스베르트가 그린 1888년의 이 작품은 중앙에 담담한 얼굴로 죽음을 맞는 토레호스 장군과 그의 곁에 있는 무릎을 꿇은 동료들 그리고 말라가 해변과 새벽의 차가운 빛이 퍼져있는 그림으로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비슷한 구성을 취하면서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도덕적 승리와 순교의 숭고함을 그려내고 있다.
토레호스 장군은 1791년 마드리드 출신으로 육군 장교였고, 자유주의자였다. 활동하던 시대는 페르난도 7세의 절대왕정 시대였다. 토레호스가 한 일은 입헌주의(헌법에 의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인물이다. 나폴레옹 전쟁(스페인 독립전쟁으로 1808~1814)에 참여해 프랑스군과 싸웠고 이후 복귀한 절대왕정의 페르난도 7세에 반대하며 자유헌법(Constitucion de Cadiz, 1812)의 복원을 요구하며 싸우다가 영국으로 망명을 갔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이 유럽이 그러했듯이,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로 보인다. 그래서 더욱 이 그림 앞에 하루 종일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812년에 스페인 카디스에서 제정된 자유헌법은 스페인 최초의 입헌 민주주의를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 후 복귀한 페르난도 7세는 즉시 헌법을 폐지하고 절대왕정으로 돌아갔다(1814년).
이후 스페인은 20년 가까이 자유주의자와 절대왕당파 사이의 내전과 음모로 흔들리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토레호스는 1820년 리베랄 혁명(Trienio Liberal)때 헌법을 지지했지만, 1823년 프랑스 군(루이 18세 “성루이의 10만 아들들”)이 개입해 자유정부가 붕괴되자 영국으로 망명을 한다.
8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자유헌법 복원과 절대왕정 종식이라는 목표 [말라가에 입성해 민중과 군대의 지지를 얻고, 헌법 정부를 재건한다.]를 가지고 비밀회합과 귀국 계획을 세워 소수의 동지들과 영국상선(El Purisima Concepcion)호를 타고 지브롤터로 이동,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자유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몰래 말라가 인근해안으로 상륙을 시도 하던 중 내부의 배신으로 페르난도 7세 정부군에 알려지고, 말라가 인근 알하우린 지역에서 포위당하고 만다. 이때 토레호스와 동지 45명은 피신을 시도했지만, “거짓 사면” 약속을 믿고 투항했으나, 말라가로 이송되어 재판없이 사형을 받게 된다.
이 그림은 1831년 12월 11일 말라가 산 안드레스 해변가에서 일어난 일을 그려낸 것으로 진정한 자유주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그림이다. 결국 이 그림의 영향력으로 1833년 이세벨 2세 시대의 자유개혁의 정신적 불씨가 되어졌다.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11미터의 오벨리스크 형태의 기념비가 말라가 중심지 플라스 데 라 메르세드(palaza de la Merced)에 위치해 있다.
아울러 이 그림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헌법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그 의미 등이 무엇인지 가슴 속 깊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영석 작가
저서: 『프라도 미술관 이야기』,
『티센 미술관 이야기』
활동: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현지 가이드,
사색의향기 마드리드 지부장,
예목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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