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기대”와 “현실”의 깊은 계곡

비리아투스의 죽음

by jairo

[전문가 칼럼] “기대”와 “현실”의 깊은 계곡

돈키호테가 들려주는 노래는 “희망”을 노래한다. 누가 무엇을 하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중요시하고 있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맞은 편에 있는 이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사람들의 관계성과 사람의 내면에 감추어진 많은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 속에 누워있는 암살당한 사람은 로마의 간담을 서늘케 한 루스타니아족의 마지막 족장 비리아투스이다. 그는 누구에게 암살을 당한 것일까? 바로 제일 오른쪽에 손을 들고 마치 “이 죽음을 로마에게 돌려주자!”는 외침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바로 자신의 절친 비리아투스를 암살한 자들이다. 로마의 전해지는 아피아노(Appianus)와 디오 카시우스(Cassius Dio)의 글에 의하면, 아우닥스(audax), 디탈코(Ditalco), 미누로(Minuro)라고 전해진다.


루스타니아는 현재 포르투칼 중부 및 서부 그리고 스페인 서부 지역으로 비리아투스가 8년간 끊임없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비리아투스의 용맹함과 루스타니아인의 강인함 앞에 로마 장군 퀸투스 세르빌리오 케피온(Quinto Servilio Cepion)은 비리아투스의 세 친구에게 여러 가지 보상조건을 내걸었고, 마침내 세 명의 친구는 자신의 절친을 암살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대로 되어지지 않는 법이 세상의 이치일까? 로마 원로원은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로마는 배신자에게 보상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았던 만화 르네 고시니의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이야기>(1959~)는 로마가 기원전 50년 경 유럽 대부분을 정복했으나, 단 하나의 마을 갈리아 마을만은 정복되지 않은 설정이다. 그리고 1969년에 <아스테릭스의 히스파니아 여행> 편에서 로마에 반항하는 한 소년과 그의 가족을 돕는 내용을 통해 혹시나 비리아투스의 후손과의 연계성을 둔 만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이 그림은 다양한 시대 속에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강인함” 속에 함께하던 “희망”과 “기대” 그리고 다가오는 “현실”의 차이 속에 갈등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여행 작가로서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생각이 겹쳐온다. 많은 “기대”를 안고 온다. 그러나 “현실 차이”는 상상하고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서 “여행”의 본 의미를 찾고자 “기대”하며 가는 무리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무엇 하나 더 안겨주려는 마음에 “열정”이 발동이 된다. 하지만, 내 자신이 세운 기준에 미달하는 것에 대해 “불만”으로 시작된 여행은 끝날까지 남은 것 없이 떠나는 것을 보며 늘 바라보며 모르는 것은 아니자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을 뿐이다.


세 친구도 자신들의 욕망이 있었기에 비리아투스와 함께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기대”가 자신들의 “현실”이라는 깊은 “한계”의 계곡 앞에서 친구를 배신하게 되고 만 것을 통해 우리는 “나 중심적 세계관”을 추구하며 갈 것인지, “타자 중심의 배려하는 삶”을 통해 좀 더 돈키호테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으로 깊은 계곡을 메꾸고 즐겁게 여행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서영석 작가

저서: 『프라도 미술관 이야기』,

『티센 미술관 이야기』

활동: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현지 가이드,

사색의향기 마드리드 지부장,

예목원 연구위원


http://www.gospe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1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것이 교육되지 않은 결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