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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교사, ADHD가 의심되어 풀배터리를 받았다.

내가 중학교 교사인데, 사춘기 아이도 모자라 나마저 ADHD였다니!

by 그림크림쌤

현직 과학교사인 내가 ADHD를 의심하게 된 이유는 이것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티라노가 위(WEE)센터 상담을 받으면서 ADHD일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닥치는 대로 ADHD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티라노의 ADHD를 의심하기 시작한 지 3개월여 만에 결국 티라노는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ADHD진단을 받은 사실을 자녀에게 솔직하게 오픈하느냐의 문제는 아이의 연령과 성향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ADHD임을 바로 오픈하지 않고 영양제라고 말하는 방법으로 우회하여 투약을 시작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티라노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였다. 우리는 티라노의 ADHD진단과 동시에 "티라노야, 너 ADHD래. ADHD란 이런 거야. 그동안 너의 이러한 면 때문에 저러한 점이 힘들었던 거야. ADHD는 전두엽 발달을 도와주기 때문에 약을 먹으면 전두엽 발달을 도와주게 되어 증상이 나아진대."라고 솔직하게 다 오픈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래서 티라노도 본인이 ADHD임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티라노가 ADHD진단을 받은 후 ADHD에 꽂혀 틈만 나면 ADHD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티라노에게 내가 새로 알게 된 정보를 전달하는 게 흔한 우리 집의 저녁 모습이 되었다. ADHD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정보 중 하나는 ADHD와 유전의 상관관계였다. 즉, ADHD 원인의 70~80%는 유전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ADHD 증상들을 아무리 보아도 남편보다는 나와 일치하는 점이 참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의심만 하다가 티라노가 ADHD진단을 받은 지 1년 후가 되어서야 나도 용기를 내어 풀배터리와 주의력 검사(CAT)를 하게 되었다. 웃긴 건 우리 집에서는 사실은 내가 검사를 하기 훨씬 이전부터 "엄마도 ADHD잖아" 따위의 농담을 주고받아 왔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 정도로 ADHD가 일상이 되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성인 ADHD검사 어디서 받아야 할까?

성인 ADHD검사는 1급 임상심리사에게 받아야 정확한 진단이 내려진다고 한다. 그래서 1급 임상심리사가 있는 심리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능하며, 소아정신과에서도 가능하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정신과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이후에 소아정신과 자격증을 따야 해서 정신과 성인 진료도 당연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니는 소아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자니 '그래도 내가 교사인데, ADHD까지 선생님께 노출되면 부끄러운가?'라는 고집스러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검사를 받을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나의 진단이 티라노의 ADHD치료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 그냥 티라노가 다니는 소아정신과에서 검사하게 되었다.




성인 ADHD진단에 필요한, 내가 받은 풀배터리 검사 항목

-개인력 조사

-BGT검사(벤더 게슈탈트 검사)

-HTP검사(집-나무-사람 검사)

-KFD검사(동적 가족화 그림 검사)

-MMPI-A(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

-SCT검사(문장완성검사)

-ROR검사(로르샤흐 검사)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 4판(K-WISC-Ⅳ)

-CAT검사(주의력 검사)




나의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4판) 영역은 언어이해지능, 지각추론지능, 작업기억지능, 처리속도지능으로 나뉜다.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 결과 난 총지능은 상위 5%이며, 특히 구조화된 문제해결능력에 필요한 지각추론기능은 상위 2%인 최우수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학창 시절 수학만큼은 모의고사에서 종종 만점을 맞아 전국에서도 탑을 찍기도 했던 터라 지각추론기능이 높은 것은 사실 많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언어지능을 포함한 다른 영역도 모두 '평균 상' 이상 수준임이 놀라울 뿐이었다. 평소 기억력이 매우 나쁜 데다, 늘 머릿속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다가 말이 꼬이기도 하며 살아온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과 머리 빼고는 전부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반대 의미로 나의 주의력검사(CAT) 결과는 놀라웠다.

주의력 검사(CAT)는 혼자 컴퓨터로 하는 검사다. 주의력 검사 결과에서는 지능검사와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다. 저하가 무려 3개, 경계도 2개라는 결과는 티라노씨의 주의력보다 나의 주의력이 더욱 심각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참고로 티라노씨는 주의 2개, 경계 1개였다.)


난 중등 교원 임용시험 30대 1을 뚫고 합격한 현직 교사인데 말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목 중 하나인 과학과이고 말이다. 당시 같은 시험장에 앉아있는 30명의 교원자격증을 가진 사람들 중 29명은 다 떨어지고 나만 합격하였다. 4년제 대학을 나온 데다가 교원자격증까지 있는 29명을 제치고 반에서 1등을 하여 합격한 내가 ADHD였던 거다.



주의력 검사(CAT) 결과가 놀라운 건 티라노씨보다 나쁘게 나와서만은 아니었다. 검사과정에서 몇 번 실수로 잘못 누르긴 했지만 작업기억력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꽤 잘 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풀배터리 검사 후 나에게 ADHD임을 통보하는 의사 선생님께 다소 억울함을 토로하였다. "저 실수 몇 번 안 했어요. 실수로 몇 번 잘 못 누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ADHD라고요?"라고 말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눌러야 할 때만 누르고 다른 기호가 나올 때 실수로 누르지 않아요. 그게 바로 충동성이라는 거예요. 충동적으로 눌러버리는 거죠."라는 답변으로 내 의문을 명쾌히 정리해 주셨다.


솔직히 작업기억력 검사는 꽤 어렵다고 느끼긴 했다. 작업기억력 검사는 마치 대학생 때 친구들과 했던 카드 기억력 보드게임인 '치킨차차'를 연상시켰다. 중앙의 카드들을 기억해 놓았다 같은 타일을 맞추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보드게임이다. 작업기억력 검사는 마치 치킨차차 보드게임처럼 기억을 한 후에 순서대로 클릭을 해야 하는 거였다.

작업기억력이 필요한 보드게임 '치킨차차'


정방향 작업기억 검사는 내가 누른 순서를 기억했다가 블라인드 처리가 된 후 순서대로 기억했다가 눌러야 하는 검사였고, 블라인드 처리와 동시에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순서대로 기억해서 클릭하는 정방향도 어려웠는데, 누른 순서와 정반대로 기억했다가 누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정방향과 역방향 작업기억력 검사를 하고 나니 대학생 때 치킨차차를 함께 할 때 친구들이 웃으며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림크림, 너 지금 진짜 머리 나빠 보이는 거 알아? 우리는 중앙 타일들 그림 다 외운 지 한참 됐는데, 너 왜 이렇게 기억을 못 해?"라고 했던 기억 말이다. 그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날 바보처럼 느끼게 만들어주었던 치킨차차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는 총 3가지로 나뉜다.

1) 주의력결핍 우세형 ADHD

부주의 발현형 ADHD 또는 '조용한 ADHD'라고도 불리며, 주로 여성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ADHD유형이다. 그리고 과잉행동이 크지 않아 조기발견이 어려워 늦게 발견되거나 성인이 되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여기에 해당한다.


2) 과잉행동-충동 우세형 ADHD

남학생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어릴 때부터 티가 많이 나기 때문에 주의력결핍 우세형에 비하여 조기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하게 ADHD라고 알고 있는 교실을 마구 돌아다니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ADHD의 모습이 여기에 해당한다.


3) 혼합형 ADHD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 충동성이 고루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티라노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알고 보니 난 전형적인 여성 ADHD에 해당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가 미처 앉기도 전에 결과지를 펼친 담당 의사가 매우 놀라며 하신 첫 말은 "지능이 엄청 좋게 나왔어요!"였다. 선생님과 내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티라노의 '평균 하'수준의 낮은 지능에 있었다. 심지어 티라노의 처리속도지능은 경계선 지능에 해당했고, 평소 나보다 티라노의 머리가 좋다고 느껴왔던 터라 '그럼 엄마인 나는 경계선 지능인 거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검사에 임했었다. 과학적으로 아들의 지능 유전자는 대부분 엄마에게서 비롯되므로, 아들의 머리가 나쁘면 엄마 머리가 좋을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평소 살면서 이해력은 좋지만 기억력이 엄청 나쁜 데다가 눈치도 없는 편이라 전반적인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더더욱 '혹시 경계선 지능이거나 아이큐가 90점대로 나온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겁을 먹고 들어갔기 때문에 매우 놀라웠다.


지능이 고지능에 해당한다는 사실부터 말씀하신 후 풀배터리 검사 결과들을 설명해 주며 담당 의사는 나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여성 ADHD에요"라고 하셨다. "그럼 저도 ADHD약을 먹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담당 의사는 "난 이 정도 고지능 ADHD는 약처방을 절대 해주지 않아요. 이 정도 고지능이면 지능으로 ADHD 커버할 수 있어요."라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셨다.


그렇게 내가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ADHD인 데다 고지능이어서 더욱 발견이 늦은 성인 ADHD임을 알게 되었고, 이유도 모른 채 무언가 힘들었던 여러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서러워 가슴에 눈물이 차올라 찰랑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서러운 감정보다 더 큰 감정은 인생 전반에 걸친 잘못의 원인을 알아낸 데서 오는 후련함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내가 ADHD라서 그랬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후련하면서 이 후련함이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이었다.





이상으로 고지능 조용한 성인 ADHD를 가진 채 ADHD자녀를 키우는 현직 과학교사 그림크림쌤이었습니다. 저와 티라노 ADHD진단과 극복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고, 나아가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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