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내가 뭘 알려주겠니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색을 교환한다.
“나는 파란색이 좋은데 너는?”
“난 분홍색.”
유치반 아이들에게 색은 아직 이름이 아니라 소통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의 색을 알려주고 너의 색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조금씩 친해진다.
아빠 이외의 모든 언어가 일본어인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는 말이 조금 어눌했다.
그래서 보육원 친구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나에게 했다.
“키노짱은 핑크, 분지군은 아오가 좋대.
아빠는 무슨 색 좋아해?”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색에는 이름이 많다.
인디언 핑크, 프루시안 블루, 버밀리온, 올리브 그린.
하지만 그런 말을 아이에게 할 수는 없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빠는… 똥색.”
좋아하는 색을 되물어 주길 바랐던 아이의 의도는 외면하게 되었지만
아이는 잠깐 멈췄다가 함께 웃어 주었다.
나에게 맞춰준 그 웃음이 좋아서
나는 그 대답을 꽤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아이는 보육원에서 종종 구석에 숨어 있던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조금 더 어린아이들 곁에 앉아 이것저것 조곤조곤 가르치곤 했다.
아이의 언어가 부족해도 그 아이들은 웃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줄넘기를 시켰고
태권도도 시켰다.
강해지기를 바랐다.
어쩌면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의 불안을 덜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주 어린 아이 때는 모두 그렇듯 몸에 비해 머리가 크다.
그래서 걸음을 떼려고 할 때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중심 이동을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그렇게 해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문득, 내가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어쩌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나보다 먼저 알고 있던 사람은 그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것.
너랑 나는 그냥 깐부야. 내가 뭘 알려주겠니.
그냥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이 걷고
같이 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