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빠는 괜찮아
“아들입니다.”
간호사의 말은 짧았고 아이는 더 짧게 내 앞을 지나갔다.
빨갛고 작은 몸이 하얀 천에 싸인 채 간호사의 품에 안겨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아이의 첫 잠자리는 내 품이 아니라 인큐베이터 안이었다.
병원 복도에 서 있던 나는 잠깐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대학 합격을 기다리던 날보다도 더 두근거리던 순간이었는데, 정작 아이를 본 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첫 만남이,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아버지가 된 느낌이었다.
아이를 제대로 마주한 것은 사흘 뒤였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보이는 작고 붉은 얼굴, 아직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듯 가느다란 숨.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상하게도 미안함이었다.
나이 먹은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작게 태어났구나.
늦은 부모였다.
준비도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맞벌이를 해야 했다.
태어난 지 6개월 밖에 안된 아이는 아침이면 보육원에 가고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를 다시 만났다.
어느 날 보육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였다.
구석에 앉아 있던 아이가 우리를 발견하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재빨리 기어 왔다.
서럽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두 팔을 뻗었다.
나는 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소주를 한 잔 따랐다.
병을 절반쯤 비웠을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탓이구나.
식탁 위 소주잔이 흐릿해졌다.
아이는 몸도 약한 편이었고 말도 조금 늦었다.
아빠에서는 한국말을 듣고
엄마에서는 일본말을 들으니
아이의 세상은 처음부터 두 개의 언어로 나뉘어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더 어린아이들 속에 숨어 지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몰랐지만 이 시기부터 일본 아이들은 거의 모두 무언가 시작한다.
엄마와 손을 잡고 나갔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 갑자기 말했다.
“아빠, 나 축구하고 싶어.”
뛰어다닐 기분에 신나서 나온 말이었겠지만 내 마음 한켠이 덜컥했다.
나는 축구를 잘 모른다.
보통 부모들처럼 선수 생활을 한 적도 없고 특별한 지식도 없다.
그래도 그날 이후 나는 축구장을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옆에서 물병을 들고 서 있는 사람.
아이를 가장 크게 응원하고 활짝 웃어주는 사람.
아이는 축구를 하며 조금씩 세상을 배워 갔다.
그리고 나는 축구를 하는 아이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경기에서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다.
잘하는 날도 있었고 아무것도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에게 한 가지 말을 해 두었다.
“언제든지 네가 그만하고 싶을 때 말해. 아빠는 괜찮아.”
아이는 땀투성이 밝그레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응.”
그때부터 우리 집의 시간은
축구장의 흙냄새와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축구 대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