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레트로 감성
몇 년 전 사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저런 때가 있었지.
젊고 가벼웠고 태평하다. 그때 입었던 옷도 기억나고 그날의 공기도 떠오른다.
그런데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면 솔직히 조금 민망하다.
‘어쩌다 이렇게 쪼잔한 녀석이 있었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쪼잔해서라기보다 너무 날것이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온 느낌.
디자이너가 된 이후 트렌드를 읽는 일은 거의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밥벌이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수학은 중간도 못 가던 내가 지금은 컨버전스율(CVR) 같은 데이터를 끼고 산다.
사람들이 얼마나 반응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그 흐름을 읽어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감을 잡기 어려워졌다.
특히 하나의 숙제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MZ세대의 레트로 감성.
트렌드에 대해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초기 수용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비로소 티핑 포인트가 형성되고 그때부터 그것을 트렌드라고 부른다.
대략 20% 정도의 지지가 형성되면 트렌드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그것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MZ세대의 레트로 감성도 바로 그런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물건 소비가 아니다.
문화 전반에서 나타난다.
문학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 모순 같은 작품이 2030 세대 사이에서 다시 읽히고 있다.
패션, 음악, 게임 심지어 말투까지도 과거의 스타일이 다시 등장한다.
한 가지 힌트는 있었다.
변화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지 않은 것을 다시 불러낸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었다.
도대체 왜일까.
나는 이 숙제를 평생 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톨스토이 문학전집을 읽으며 자랐고
『광장』과 『인간시장』을 읽던 세대다.
그런데 지금 『모순』 같은 수십 년 전에 나온 책들이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이런 이유 아닐까.
요즘 아이들은 엄청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한다. 발육도 좋고 정보도 많다.
지금 내가 학교로 돌아가 이 아이들과 경쟁한다면 중간도 못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지식은 충분히 주었지만 삶의 방향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해 주었을까.
그래서 어쩌면 이 세대는 앞으로만 달려왔던 부모 세대의 책과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다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다시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꽤 훌륭한 방식이다.
이 친구들은 과거에서 차용하고 그 안에서 배우고 있었다.
어쩌면 MZ세대의 레트로는 유행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다음 세대가 그들만의 방향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글도 몇 년 뒤에 다시 읽으면 또 민망해질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속에 남아 있던 작은 숙제 하나는
오늘 조금 풀린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