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킴에 대한 작은 선물
골프 몸치라는 별명을 가진 나는 3년간 백돌이를 면치 못했다.
책상 앞에서 공상만 하던 사람이라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숫자를 줄이기보다 관전으로 포인트를 바꾸었다.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골프 중계 방송은 누군가에게는 스포츠도 아니며 도대체 무슨 재미로 관전을 하는가에 대한 핀잔도 듣는다. 상대 면전에서 오그라드는 소심한 내가 그에 대한 변을 여기서 늘어놓는다면, 스포츠마다 고유한 호흡이 있다. 축구는 45분짜리 드라마 두 편이 이어지고, 야구는 15분 전후로 막이 반복되어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내가 생각하는 골프라는 스포츠 드라마는 단순하다. 선수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는 것이다.
이 선택이 맞는가. 지금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골프는 멘털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 스포츠다.
나는 그 행간을 읽는 재미로 골프를 본다.
올해 시즌이 시작되었다.
매년 골프계에는 괴물 같은 신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수식어가 붙는다.
‘포스트 타이거 우즈.’
이 표현은 수많은 골퍼들에게 붙었다가 사라졌다.
한국계 여성 골퍼 미셀 위에게는 한때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목록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앤서니 킴. 아니, 한국 이름으로는 김하진.
김하진(이하 앤서니 킴)은 LA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1985년 태어나고 자랐는데 타이거 우즈의 나라답게 수많은 아마추어 골퍼와 골프 지망생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이른바 '골프 성골'로 자라나기는 동네에서 공 좀 차는 아이가 어느 날 프리미어리그, 그것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것만큼 어렵다. 전 세계에서 골프에 미친 사람들이 죄다 모여서 자기가 더 미친 것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이고 앤서니 킴이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챔피언이 되었을 때도 전국 기준으로 보면 그저 ‘잘하는 고등학생’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달랐다. 2006년, 스물한 살. 그는 PGA 투어 카드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후 10년 가까이 투어를 종횡무진하며 이름을 알린다.
(이 시기의 화려한 활약상은 검색해 보기를 권한다.)
인생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손님을 데려온다. 2012년 지병이던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이후 끝없는 추락을 맞이하게 된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입스에 걸린 것처럼.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술과 약물에도 손을 댔다고 털어놓았다. 경기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PGA에서도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한때 ‘포스트 타이거 우즈’라 불리던 선수는 그렇게 골프계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흘렀다. 골프계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리그 LIV 골프가 등장하며 기존 PGA와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앤서니 킴에게도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랭킹도 없던 그는 처음부터 다시 증명해야 했다. 2024년, 2025년.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방출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1000명이 참가한 단 3명만 살아남는 출전권 경쟁.
앤서니 킴은 그 마지막 자리,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26년. LIV 골프 리야드 개막전. 파이널 라운드, 그는 존 람과 브라이슨 디섐보에게 뒤져 있었다.
5타 차. 하지만 결국 그는 그 격차를 뒤집었다.
스포츠에는 늘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도 있고 빌런도 있고 조연도 있다.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은 단연 앤서니 킴이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선수가,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나락에서 다시 기어오른다. 신들린 듯한 집념으로.
이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의 주인공. 그리고 그 드라마의 조연은 나락에서 구원한 그의 아내와 딸이다.
지금 그의 얼굴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일그러진 표정과 거친 인상 때문에 어떤 사람은 약물의 흔적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보인다. 그 얼굴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수많은 시간의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골프 팬으로서 인생 드라마의 관객으로서 그리고 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나는 앤서니 킴을 응원한다.
어쩌면 골프는 단순히 공을 치는 게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게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