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와 엔카, 닮았지만 다른 노래
트로트와 엔카는 닮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노래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구체적인 논쟁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정리되었다. 찾다 보니 M프리미어의 신윤재 기자가 2021년 4월에 균형 있게 다루기도 했다. 나는 그 위에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고자 한다.
기사에 나왔듯이 엔카와 트로트는 본질적으로 닮았지만 결과는 다르다.
일본에서 엔카는 1880년대의 엔제츠카(연설가, 演説歌)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민권 운동가들의 길거리 연설이 금지되면서 사회 모순을 노래로 풍자한 것이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요즘 일본을 보면 조선의 탈춤이나 판소리처럼, 은유로 시대를 비판하던 시절도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패전 이후 일본에는 미군과 함께 폭스트롯이 들어왔다. 그 리듬이 지금의 2/4박자 엔카로 발전했다.
한국 역시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같은 흐름을 공유했다. 트로트라는 이름도 foxtrot의 일본식 발음에서 왔다.
실제로 7~80년대 많은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서 엔카를 배우기도 했다. 한동안 양국의 노래는 쉽게 구분되지 않을 만큼 유사한 결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후의 흐름은 달라졌다. 트로트는 점차 슬픔과 욕망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시름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주제의 확장성과 서사의 다양성은 대중을 넓게 끌어안았지만, 일각에서는 다소 직설적이고 통속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반면 엔카는 체념과 인내, 운명 같은 정서를 중심에 둔다. 바다, 술, 눈물, 여인. 반복되는 상징과 정서적 응축이 장르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여기에는 흔히 말하는 엄근진이 바탕에 깔려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일본에 오래 살다 보면 조금씩 동화된다. 한국식으로 모나 있던 정수리가 조금씩 깎여나가는 느낌이다.
그래선지 가끔 한국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일본인 다되었다고 핀잔을 듣는다.
이처럼 같은 뿌리에서 자랐지만 다른 나무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환경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는 외세 침략과 분단, 산업화라는 급격한 격변을 겪었다. 감정을 빠르게 분출하고 해소하는 문화적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트로트는 울고, 웃고, 풍자하며 감정을 밖으로 밀어낸다.
엔카는 다르다. 울지 않는다. 감정을 안으로 삭인다.
그렇게 안으로 삭이며 버티는 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팬들은 그것에 동감한다.
이 다름을 우열로 나눌 수는 없다. 분출과 응축, 감정 해소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세미 트로트’가 등장하며 장르의 확장이 한층 가속화되었다. 아이돌적 요소와 결합하고, 세대가 뒤섞였다. 일본에도 변화의 조짐은 있지만 이만큼 급진적인 변주는 드물다.
최근 한일 음악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온도 차 역시 문화적 리듬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일지 모른다.
이어령 선생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을 “생존을 위해 극도로 정교화된 시스템을 가진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 문장을 빌리자면
엔카는 '과거의 시간을 정교하게 보존하는 박물관'에 가깝다.
반대로 한국의 트로트는
'시대의 욕망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엔카가 트로트인가라는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흘려보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