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 이겼다

03 나는 손웅정이 아니다

by 무비

입학식 날, 학교 앞 작은 공원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벚꽃 잎이 눈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옆 미끄럼틀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는 그동안 두 번이나 한 달씩 입원을 했고 아직 조금 약한 몸으로, 공원 한쪽에 서 있었다.


이 시기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운동을 시켜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공놀이를 하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아이가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는 동네 축구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내는 몇 번이나 나에게 물었다.

어떤 팀이 좋을까. 강한 팀, 친절한 팀, 유니폼이 예쁜 팀.

나는 늘 습관처럼 대답했다.


'집에서 가깝고 다니기 쉬운 곳.‘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시작하면, 6년을 해야 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동네에서 매주 얼굴을 마주하게 될 선택이라는 걸.


스포츠 양판점에서 축구공을 사려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축구공에도 사이즈가 있었다. 초등학생은 4호.


유니폼도 샀다. 스테인리스 물통도 하나 샀다.

앞으로 금방 클 거라는 주변 말에도 불구하고 가장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는데도 아이에게는 헐거웠고

수통(스이토우水筒)라고 불리는 물통.

내 군 시절의 고단함이 담겼던 그것이 이제는 운동장 한 켠에서 갈증을 해소할 도구가 되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집에 축구하는 아이가 생겼다.

아이는 손흥민이 아니고,

나도 손웅정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경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툇툇, 수박씨를 발라내어 앞 접시에 올려놓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어느 여름날이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아이와 땅따먹기 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함정을 파 놓았지만 아이는 너무 쉽게 빠져나왔다.

조금 얄미울 정도였다.


그러더니 다리를 꼬고 콧노래까지 불렀다.

분명히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여유를 가지고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는 '호랑이'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허둥지둥 이겼다.


그리고 패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이게 이 아이가 가진 승부욕이구나.


나는 이 아이의 상대가 아니라,

지켜봐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옆에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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