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5 햇살이 너무 밝던 날

by 무비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다음에 다시 도전하면 돼.”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끄덕였다.


학년별로 지역에서 가장 잘하는 25명을 선발하는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4학년에 우리 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릎에 묻어 있던 운동장 흙이, 발끝이 벗겨져 허물어져가기 시작하는 스파이크.

떨어진 눈물방울에 젖어 점점 진한 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말은 끝났지만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봄의 낮은 햇살이 눈을 찌르는데다가 흙먼지바람도 있어서 입을 꽉 다물었다.


그라운드 구석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니

그제야 바람이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피가 막 마르기 시작한 무릎 상처가 흙먼지와 엉켜있다.

가슴과 허벅지의 멍자욱을 보면서 얼마나 사투를 벌이고 왔을까.


뭐가 부족했을까. 뭘 더해야 했을까.

아픈 건 몸이 아니라 막막한 마음이다.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아이들도 패배를 조용히 견딘다는 것을.

침묵으로 함께 있는 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언제까지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말은 아이를 위한 걸까,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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