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코츠 라멘

냄새를 넘고 나서야 닿는 맛

by 무비

일본에 살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골목 어귀의 자판기, 전철 안의 정적,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진 라멘 한 그릇.


나는 맛있는 것을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가끔은 맛을 알기 전에 먼저 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냄새다.


돈코츠 라멘이 그랬다.

처음 맡았을 때 솔직히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돼지뼈를 오래 고아낸 특유의 누린 냄새.


어릴 적 집에서 소뼈를 고아낼 때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집 안에 그 냄새가 가득 차면 한동안 친구를 부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돈코츠는 그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인지 맛을 보기도 전에 돌아서는 사람도 많다.

한 입 먹어보고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는 경우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시 먹게 된다.

탁한 국물 속에 깊게 눌러앉아 있는 고소함.


단맛, 짠맛, 그리고 지방.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는 요소가 묵직하게 쌓여 있다.


그 맛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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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코츠 라멘의 시작은 후쿠오카 구루메시의 포장마차였다.

1937년, 돼지뼈 육수를 맑게 우려낸 라멘으로 시작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여러 번 걸러낸 맑은 국물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탁한 돈코츠는 실수에서 만들어졌다.


강한 불로 오래 끓이는 바람에 국물이 하얗게 변했고,

버리려던 그 국물을 맛본 순간 깊은 풍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만든 맛.


의도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솔직한 맛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계획된 완성보다 우연한 발견이 더 깊이 남을 때가 있으니까.




이 라멘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안쪽으로 스며드는 맛.

강하게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쌓는다.

그래서 먹고 나면 입안에 오래 남는다.


포장마차에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던 사람들이 잠깐 멈춰 서서 먹던 음식.

빠르게 먹고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그 안에는 그들의 리듬이 있다.


이 라멘을 먹고 있으면 그 나라의 생활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라멘을 좋아하게 되었다.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그들의 방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냄새를 넘고, 낯섦을 넘고 나서야 닿는 맛.

그런 음식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게 쉽게 잊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 일본에 온다고 하면

나는 또 이 라멘을 같이 먹으러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냄새를 넘고 낯섦을 넘어야 닿는 이 맛이

내가 이 나라에서 배운 것과 조금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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