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리와 골목 사이
“7시에 투다리에서 보자.”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 그곳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모이기 쉬웠고,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꼬치를 먹었다.
그전까지 꼬치에 끼워진 음식은 어묵이나 솜사탕 같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불에 구워진 고기를 꼬치째 들고 먹는다는 것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한 꼬치가 온전히 내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누구와 나눌 필요 없이
내가 집어 들고,
내가 먹는 음식.
그 단순한 구조가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 일본에서 다시 그 꼬치를 마주했다.
동네 인근에 마츠리가 열렸다.
요란한 북소리와 저고리처럼 생긴 하마키에 짧은 바지 입은 아저씨들이 미코시를 이고 나른다.
그 길 양옆으로 야키소바, 야키토리. 마츠리의 단골 메뉴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길이 바쁘고
나는 먹거리를 찾느라 눈길이 바쁘다.
'야키토리 먹을래'
아이가 말했다.
먹으면서 이동할 수 있고 쓰레기가 크게 남지 않는 것.
암묵적 동의 하에 세 개를 주문했다.
음.. 아내가 말했다.
흠.. 내가 고개를 저었다.
맛없어! 아이가 말했다.
같은 꼬치인데
셋 다 다른 이유로 싫어했다.
축제 음식이라서 그런 걸까. 원래 이 정도인 걸까.
그 의문은 한동안 그냥 남아있었다.
어느 날 저녁 혼자 동네 골목을 걷다가 발견했다.
붉은 초롱이 걸린 작은 가게.
자리에 앉으면 먼저 생맥주를 시킨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들을
외우듯이 주문한다.
네기마, 츠쿠네, 레바, 모모, 테바사키.
주문을 마치고 나면 할 일이 하나 남는다.
기다리는 것.
숯불 위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냄새가 가게 안을 채운다.
간장이 타는 냄새와 고기의 기름이 떨어지는 소리.
내 꼬치가 어디쯤 와 있는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냄새로.
그렇게 나온 야키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뜨거운 온기가 아직 남아있고 간장에 그을린 향이 난다.
대신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한 입 먹고 나면 왜 이렇게 굽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예전에 한국 출장에서 비슷한 걸 시켜 먹은 적이 있다.
이 맛을 기대하고 시켰지만
눅눅했고, 향은 더 달고, 양념은 흘러내렸다.
같은 이름인데 다른 음식처럼 느껴졌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건 단순히 재료나 레시피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차이구나.
어떻게 굽고
어디까지 기다리고
어떤 타이밍에 내는지.
그 반복이 맛을 만든다.
나는 야키토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그들만의 방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 아내와 아이를 데려갔다.
아내는 한 입 먹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두 개를 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