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미

간장 종지만 두고

by 무비

질퍽한 물기가 가득한 노량진 수산시장은 아르바이트 장소였다.

새벽부터 시작하지만 일찍 마칠 수 있고 급여도 좋았다.


동이 트면 낮은 햇살이 시장의 어두운 길을 비춘다.

질퍽한 물기가 반짝이는 비단길로 바뀌면

이제 청소를 시작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반가움이 든다.


아르바이트 중에 가끔 시장식 회식을 하곤 하는데

배달시킬 식당에 팔던 생선을 조리해서 주문하거나

협상이 결렬된 생선회가 나올 때 이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살에는 결이 있어 쫄깃한 식감을 살리는 칼질과

피를 빼고 기다리는 시간이 맛을 만든다는 걸.


충청도 양반이셨던 부모님은 철이 날 때까지 내륙 지역에 사셔서

신선한 생선에는 연이 별로 없으셨고

그 덕에 식탁에 오르던 생선류는 탕이거나 구이가 많았다.


그만큼 어류 조리나 생선에 무지 했던 터라

바닷가 사람들이 알차게 맛있게 먹는 방식이 신선했다.


섬나라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생선요리나 사시미를 먹을 경우가 많은데

초고추장 맛으로 먹던 회만 생각하다가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으며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초고추장 튜브가 있어서

나는 사시미를 먹을 때 나만의 소스 종지를 앞에 둔다.


어느 날

사시미를 좋아하시는 일본분과 식사 자리에서 초고추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나를 존중해 주셔서 맛있을 거 같다고 웃으며 동의해 주셨지만

각 생선에서 나는 고유한 향과 기름의 풍미를 그때는 아직 몰랐을 때여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집에는 생선이라면 날것부터 굽기까지 모든 분야를 좋아하는 두 명이 있다.

자세히 설명을 해보라면 모르지만 먹을 때 표정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시미는 입에 넣고 잠시 풍미를 음미하고

구이는 너무 타지 않게 구워 부드러움을 유지시킨다.


어느 날 좀 비싼 곳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오오토로라는 초밥을 주었는데 입안에 넣자 스르르 사라졌다.


초밥은 입안에서 사라졌지만

감촉과 생선의 향긋한 기름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맛이 남는 느낌’을 알았다.


그 기억을 또 맛보고 싶어서

집에 돌아와 간장 종지만 두고 슈퍼에서 사 온 사시미를 꺼냈다.

옆에서 아내와 아이가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느껴졌다.

그 향과 기름기, 부드러움.


며칠 뒤 사시미를 좋아하시는 분과 또 식사를 했다.

한 점 떠 입안에 넣고 서로 빙긋이 웃는다.


마구로에 기름이 좋게 올랐다.


이렇게 또 나는 먹거리가 늘어났다.

작가의 이전글야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