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이 여기까지 왔다
5남매인 우리 형제는 누구 하나 소풍을 가게 되면 남은 아이까지 전부 김밥을 말아주셨다.
언젠가 어머니께 왜 그렇게 하시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입이 즐거워야 마음이 즐거워.'
막둥이인 나는 학교를 안 가도 김밥을 차지할 수 있어서 마냥 좋았지만
어머니께서도 아이들이 즐거워할 모습에 노고를 잊으셨을 거 같다.
아내는 축구 시합이 있을 때마다 아이에게 중간에 먹을 오니기리를 싸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도 한 입 싸달라고 부탁한다.
어머니의 그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하고 싶어서.
어느 날 다음 시합을 기다리는 운동장 옆에서 아이들이 먹기 시작했다.
나도 내 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한 입 베어무니 쌀이 이렇게 고소했던 것인가 싶었다.
간간한 소금맛이 갈증을 줄여줬다.
소박했다. 그런데 자꾸 입이 간다.
가족 나들이 중에 굳이 오니기리 전문점을 찾아갔다.
아내 의아해하는 표정보다 나의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얀 노렌에 히라가나로 크게 쓰여 있는 글씨 하나.
お. 오니기리의 첫 글자였다.
목재틀로 만들어진 입구와 같은 톤의 심플한 의자가 보이고
나무 도마처럼 생긴 받침대에 음식이 나왔다.
흰 쌀에 검은 김. 산 모양을 닮은 삼각형.
보기엔 단순한데 한 입 먹으면 각 소재가 따로 살아나서 협주하는 느낌이 난다.
한국에 비해 뻣뻣한 김은 쌀의 수분을 받아 시간이 갈수록 촉촉해진다.
쌀과 소금과 김이 합쳐지면서 다음 한 입을 재촉한다.
200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름만 몇 차례 바뀌었을 뿐
역할과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래 남는 것들은 대개 이렇다.
심플하고, 질리지 않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다.
어머니의 김밥도 그랬다.
다섯 아이 중 누가 소풍을 가든 나머지 넷 몫까지 말아주셨던 그 김밥.
입이 즐거워야 마음이 즐겁다는 말이
오니기리 한 입에 다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