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가 말하는 것들
불을 끄고 커튼을 쳤다. 혼자 남은 집에서 최대한 극장에 가깝게 만들었다.
오래 기다렸던 넷플릭스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 단편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화면으로 읽었다.
연일 된 폭격으로 폐허처럼 변한 거리. 그리드를 벗어난 사선의 빗발침. 이 한 장면이 함축한다.
초반이 길었다.
극심한 자책, 에이다의 방문, 거절.
기대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런데 화면은 처음부터 달랐다.
그는 침체되어 있었다. 검정에 가까운 프루시안 블루에 얼굴을 명과 암을 보여주는 측광으로 등장한다.
입체감을 가장 살려주는 조명이지만, 그의 얼굴이 익숙한 관객에게는 그의 심정을 대변한다.
토마스가 아서의 묘비에 걸쳐둔 루비의 목도리.
우리는 금적색이라고 부르는 절대적인 빨강이 묘비에 얹히는 장면.
블루와 섞일 수 없는 이질감은 풀 수 없는 숙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에이다는 중앙에 배치되고 배경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사선이다. 대칭이 허물어진다.
눈물처럼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길 한 복판에 검정 우산을 쓰고 레드바이올렛 옷을 입고 나타난 에이다의 장면은 불길한 암시이다.
어깨까지 내려온 어둠이 삶을 누른다.
병원 복도 장면. 토마스가 걸어온다.
좌우로 시체들이 놓여있고 그는 그 가운데를 가를 수밖에 없다.
좌우 대칭인데 대칭이 주는 안정감이 없다. 좌우의 벽돌색 밑으로 하얀 천을 덮은 시체를 늘어놓았다.
허탈함이 화면 구조 안에 이미 들어있었다.
에이다가 폭격지를 걷는 장면. 뒤로 사람과 자동차가 멀어지며 깊이가 생긴다.
공장 삼각 형태 지붕의 사선으로 떨어지는 예각이 불길하다.
바닥의 불규칙한 선들이 불안감을 준다. 정형화된 구도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불편하다.
이 장면의 다음에 나오는 에이다의 불행과 겹쳐지는 구도가 된다.
구도와 구도의 복선이라면 탁월하고 좋은 선택이다.
듀크가 말썽 부리는 장면에서 그는 이미 화면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
철로처럼 뻗은 바닥선 위에 사람들이 서있다.
멀수록 작아지는 구도가 깊이를 만든다.
대치하는 사람들을 중간이 아닌 일방적인 한쪽 시선으로 잡아내어 불합리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토마스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속도가 붙었다.
말이 다시 등장했다. 토마스는 항상 말을 소중히 여긴다. 그가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돼지우리 장면. 더러움과 돼지의 복잡한 움직임으로 동선을 예측할 수 없는 공간인데 뒤쪽 기둥과 그림자까지 사선으로 떨어진다.
어지럽고 불안하다. 그의 심정이 배경에 깔려있다.
듀크의 원샷. 뒷 벽면 견고한 사각의 반복 안에 그가 놓여있다.
비스듬히 앉아 비스듬히 바라본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한다. 왕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무게가 화면에 있다.
이 영화는 내내 화보였다. 어느 장면에서 멈춰도 그건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구도가 결국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토마스 쉘비의 끝.
죽지 않았으면 했다. 오래 봐온 사람이라 그랬다.
왕관을 건넬 때 그의 마지막 말은 지극히 그다웠다.
I am a horse. You'd do it. You'd do it for a horse.
나는 말이야. 말에게 자비를 베풀어줘.
그리고 마지막.
In the bleak midwinter.
쓸쓸한 한겨울 날에.
이렇게 번역한 사람은 피키를 아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안심했다.
그를 떠나보내기에 걸맞았다.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솔직히 그랬다.
그래도 커튼을 다시 열면서 생각했다.
화면 하나하나에 그의 끝을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게 보이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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