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부시X뱃노래가 선택한 것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청군 백군 나뉘어 자기 팀 머리띠를 두르고 달리기를 한다.
이 머리띠 메는 방식 중 일본에는 하치마키라는 것이 있다.
어려울 거 없이 그냥 머리띠 두르는 건데,
매듭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운동회 버전이 되기도 하고 마츠리 버전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는 거의 없는 방식이다.
상투 위에 덧대던 건도 아니고 하녀와 머슴의 패션 아이템 옆 매듭과도 다르다.
이번 소란부시X뱃노래의 도입부에서 하치마키 매듭으로 홍지윤이 등장했다.
북해도의 소란부시를 들고.
홍지윤의 현역가왕 '뜬소문'이나 ‘미스터 유’ 무대를 보며 나는 “쇼가 가능한 트롯 가수가 등장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다음 쇼를 보게 되었다.
이 무대는 상당히 계산되어 있다.
먼저 한일 대중 민요를 겹쳐 놓고 의상과 율동 역시 두 문화의 요소를 중첩시켰다.
의상은 어부 콘셉트에 맞게 치마 대신 바지로 바꾸었는데 과거 전쟁터로 끌어내던 몸뻬 형태의 꽃무늬 홋바지를 검정바지와 반짝이 검정 고무신으로 대체하였고 흰 한복 댄서들과 구분되도록 본인만 상하의를 화이트 블랙톤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이 의상에는 단점이 있다. 160센티가 되지 않는 홍지윤에게 상하 분절된 의상은 신체를 주변보다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약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스터 유에서의 춤이 살랑살랑과 곡선 중심의 댄스이었다면 소란부시X뱃노래는 철저히 직선 위주의 안무이다.
한국 일본 가리지 않고 뱃노래는 힘을 강조하는 남성적 동작인데 이런 연출에서 주인공이 작게 보여 곡의 박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몇 가지 있다.
작아 보일 수 있는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추임새를 넣을 때는 온몸을 사용하는 바운스를 사용하고, 방향을 지시하거나 반복되는 동작은 크고 절도 있다.
한국과 일본 곡이 전환되는 구간에서는 양팔을 크게 벌려 태극권처럼 돌리는 동작을 사용하여 암시한다.
중간에 혼자 앞으로 나가 청중을 유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직전에 뒤춤에 꽂아두었던 생선 모형 소품을 옆으로 던져 버린다. (클린버전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남성 댄서들의 가마를 타고 있을 때 뒷 춤에 넣어준 것인데 분명 쓸 예정이었겠지만 어느 순간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무대가 철저히 계산된 쇼이면서도 동시에 실시간 판단이 개입된 공연이라는 점 때문이다.
소란부시는 일본 북해도의 전통 민요다. 거친 바다에서 힘든 뱃일을 하며 만선과 안전, 그리고 단합을 기원하는 노동요이기도 하다.
일본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정해진 후렴구와 율동도 있는데 그걸 차용하면서 뱃노래에 녹여낸다고? 솔직히 위험한 선택이다.
사회 정체성 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은 내집단과 닮은 타인에게 오히려 더 가혹해지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그런 장면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일까. 일본 민요인 소란부시를 한국 방송 무대에 올린다는 선택은 득 보다 실이 많아 보였다. 자칫하면 낯설고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소재다. 하지만 의도한 콘셉트와 순간적인 판단들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자 그 낯섦은 오히려 친근함으로 중화되었다.
이 무대에서 가장 놀라웠던 지점은 따로 있다.
결과를 위해 외모가 아니라 박력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을 위해 과감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