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칭찬하는 날
우리 집 저녁 식사는 하루를 나누는 시간이다.
내 하루를 건네고, 상대의 하루를 조용히 받아 든다.
학교에서 요시이와 자리 순서로 실랑이 벌였던 이야기.
엉뚱한 내용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상사에 대한 속사포 뒷담화.
둘의 빠른 입을 닫게 만드는 나의 개똥철학 논평.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 하나씩 식탁 위로 올라온다.
각자 다른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다 하나 둘 집으로 모이면,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연다.
남아 있는 반찬을 꺼내고, 밥솥의 남은 밥을 데우고, 국을 한 번 더 끓인다.
익숙하고 당연한 손놀림 끝에, 그간 올라왔던 수많은 메뉴 중 하나가 가운데 놓인다.
가끔 칭찬만 하는 저녁이 있다.
누군가 크게 화를 낸 것도 아니고, 뒤집어질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냥 안다.
평소의 소소함보다 마음을 조금 더 무겁게 만드는 일이 있었던 날이라는 걸.
그저 집 안 공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고, 누군가 마음 위에 작은 구름 하나를 얹고 지나간 날.
이럴 때 침묵으로 팽팽한 공기를 가르는 건 단순하다. 그냥 누군가 한마디를 한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니 맛난 걸 먹자.”
그런 날의 식탁에는 거의 스키야키가 오른다.
언제나처럼 식탁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꺼낸다.
대신 한 가지 약속이 있다. 저녁 수다는 가급적 칭찬만 하자.
“요시이가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줬는데 정말 맛있었어.”
“감사 메일이 왔는데 너무 고마워서 나도 바로 답장을 했어.”
퍽퍽한 일상에서 잠시 머리를 굴려야 할 아주 사소한 칭찬들이지만, 그런 말들이 이어지다 보면 집 안 공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소기름을 두른 냄비 위의 얇은 소고기가 천천히 붉은빛을 잃어가고,
간장과 설탕, 미린이 섞인 달콤짭조름한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
파와 버섯, 두부, 실곤약이 차례로 자리를 잡으면 금세 탐식의 시선이 냄비 위로 레이저 광선처럼 꽂힌다.
내가 먼저 고기를 양보하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계란을 풀어 둔 앞접시에 한 점 더 올려준다.
배시시 웃으면 좋고 시선이 남아있으면 하나 더 올리면 된다.
스키야키는 묘한 음식이다. 이상하게도 혼자 먹는 음식 같지 않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하는 음식 같으면서도, 막상 먹기 시작하면 모두의 표정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살아오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음식이 단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스키야키는 일본 음식이면서도 어딘가 한국스러운 음식이다.
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수다를 떨고,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앞접시에 덜어주고,
말끝마다 웃음이 붙는다.
어릴 적 도란도란 했던 식탁이 그랬던 것처럼.
방식이 달라도 중심은 늘 같다.
함께 둘러앉아 수다 떨며 먹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스키야키는 그저 단순한 일본 음식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스키야키는 한국식 화해의 의미이기도 하고, 위로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이때 오간 칭찬의 말들은 달달한 국물처럼 천천히 미소로 퍼진다.
입이 즐거워지면 마음도 조금 늦게 따라와 준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니 맛난 걸 먹자.”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낸 가족에게 보내는 작은 격려이자, 다시 웃어 넘기자는 신호다.
우리 집의 흐린 날씨는 늘 스키야키 냄비 위에서 먼저 맑게 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