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이라는 막을 올릴 때
어머니께서 밥에 올려주신 신김치 조각에 투정을 부린다.
'김치 많아!'
빙그레 웃으시며 아니야, 이 편이 더 맛있어.
뚱한 말과는 달리 물풍선처럼 부푼 볼이 콧노래와 함께 이리저리 움직인다.
음식 중에 가장 일본스러운 음식을 꼽자면 초밥이 빠질 수 없다.
대개 영화나 드라마 일식집 하면, 배경으로 나오는 기모노 입은 종업원이 초밥을 들고 다닌다.
베이스로 깔린 흰쌀밥 위에 다채로운 색과 각기 다른 소재가 어울려 하나의 초밥으로도 완성도가 있으며 군집을 이루어도 그 통일감을 해치지 않는다.
이런 일본의 깔끔히 정리된 형태는 오랜 시간 만들어져 온 것인데 그런 습관이 음식에서도 나타나서 흥미로웠다.
초밥은 고급 음식이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한 모양이지만, 초밥은 처음부터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바다 가까운 마을에서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삭혀 먹던 발효 음식이, 시간이 흐르며 날생선을 올린 지금의 모습으로 다듬어졌다고 한다. 인구증가에 따른 빠른 제공을 위해서라는 기록으로 봐서 요즘 식으로 하면 패스트푸드에 가깝다고 보인다.
잠시 한국에서 유행했던 오마카세처럼 고급 취급이 되었던 건 신선한 재료도 있지만 오랜 기간 수련한 장인의 손길 값이 크다. 짧은 대화 몇 마디만으로 손님의 취향과 속도까지 읽어낸다. 예전 장인들은 식초절임 밥을 한 줌 쥘 때마다 크기가 거의 같았다고 한다. 정밀한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손이었다.
요즘에는 서빙을 레일로 연결하고 냉장 기술의 발달과 기계화로 대량 조리가 가능해지며 대중화되었고 고급 초밥도 살아남아 양극화로 안착했다.
우리 집에서도 초밥은 조금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다.
누군가 집에 왔을 때나 밖에서 만날 때, 날것이 식사 가능한지만 확인하면 된다.
하나씩 독립돼 있어서 각자 취향대로 고를 수 있어 대접하는 자리에서도 부담이 없다.
생강 절임에 간장과 와사비만 간단히 준비하고 좀 비싼 세트를 주문하는 아내도 콧노래가 나온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을 때 선택지가 많으면 눈과 손가락에 로드가 걸리지만 초밥은 다르다.
모둠 초밥을 열면 마치 패션쇼 마지막 무대 같다.
알록달록한 모델들이 한꺼번에 런웨이 위로 걸어 나오는 순간처럼 눈이 먼저 움직이고 손은 잠깐 망설인다.
흰 밥 위에 각자의 외투를 걸친 재료들은 단정하면서도 화려하다.
디자이너 눈으로 봐도 하나의 프레임에 올려진 통일과 변화, 반복.
초밥은 이 모든 걸 한 막에 올려놓지만 자연의 색이라 형형색색도 어색하지도 않다.
오늘은 어떤 출연자가 등장했는지 두근두근하면서 천천히 뚜껑의 막을 연다.
음식의 패션쇼를 즐기는 마음이 통했는지 같은 구성에도 서로 먹는 순서가 다르다.
나는 바쁘게 입안을 움직이면서도 항상 먹고 싶은 게 다음 순서로 기다리고 있다.
가끔 그날 마음에 따라 앞뒤 순서만 바꿀 뿐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기가 먹은 소재의 훌륭함과 신선함을 경쟁한다.
대접과 배려에 대한 찬사일 터인데 겸손하게 수긍하지 못하고 더 큰 찬사를 궁리한다.
눈앞의 음식 패션쇼를 마치고 나면 누구랄 것 없이 서로 눈을 맞추는 무언의 동의로 만족함의 막을 내린다.
어머니가 숟가락 위에 신김치와 멸치볶음을 랜덤 하게 올려주시던 것처럼
초밥도 그날의 마음에 따라 손이 먼저 가는 순서가 달라진다.
어머니의 숟가락에서 콧노래 부르던 그때와 달라진 건
지금은 제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