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세대가 보는 홍명보

재는 왜 이럴까?

by 무비

월드컵 친선 시합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는 왜 이럴까.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이 되겠지만 나는 홍명보 감독과 동갑내기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후배 세대들이 잘 모를 것 같은 부분이다.


그 시대 한국 축구는 두 마디로 정의된다. 투지와 절대적인 강함.

기술보다 체력, 반칙을 불사해도 승리를 쟁취하려는 투지가 전부였다. 그 시기 한국팀을 상대한 거의 모든 팀이 승패와는 상관없이 한국을 "무서웠다"라고 표현했다.

그런 축구를 한다는 건 선수가 상명하복 속에서 힘든 훈련과 폭행을 견디는 일이었다. 요즘 이강인 같은 스타일은 꽃피울 수 없는 환경.


그리고 그 시대에 축구로 성공한 사람에게는 독특한 자의식이 생긴다.

내가 이 시스템을 견뎌냈다. 내가 한국 축구를 대표한다.


홍명보는 그 자의식이 가장 강하게 형성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FIFA 선정 100대 선수, 2002년 4강의 주역, 올림픽 동메달 감독.

한국 축구 성장기의 모든 혜택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래서 2014년 경질되었을 때 "한국 축구가 나를 버렸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한국 축구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데.


히딩크가 들어섰을 때 그의 첫 번째 조건은 전권 위임이었다.

국대 고참이 되어 이제 누릴 수 있게 된 시점에 히딩크가 그 룰을 깨버렸다. 반항했던 그가 히딩크를 롤모델로 삼게 된 이유가 거기 있다.

이전 국대 감독 실패를 외부 압력을 버티지 못한 것에서 찾고, 이번에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이번에도 회장과 협회까지 그걸 돕는다.


하지만 히딩크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과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버팀과 결과는 순서가 있다.


2024년 선임 과정이 논란이 됐을 때 홍 감독은 국회 청문회에 나와 사퇴 의사가 없다고 했다.

면접도 없이 선임됐다는 지적에 절차상 문제없다고 했다.

박지성, 이영표, 이동국이 반대 목소리를 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버티는 것.

그게 그가 아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축구 인생 전체에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손해 날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문제는 이런 혜택 받은 삶이 메타인지를 망가뜨린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하지 않다.

항상 그랬듯 결국 나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기 때문에.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코트디부아르에 0대 4, 오스트리아에 0대 1로 연패했다.

전문가들이 "우리 것이 없다"라고 했다. 그는 "전술적 다양성을 실험 중"이라고 했다.

10년 전 멘트를 반복하는 것 같은 이상한 인터뷰.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아직도 여러 방송 해설에서 "한국 선수들 투지가 없다, 너무 안 뛴다"는 말이 나온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로 대표되는 팀을 가지고서도 그 시대의 언어로 지금을 읽고 있는 것이다.


축구는 반복 운동이다. 상대에 대응하는 전술을 만들고 그걸 90분간 끊임없이 반복한다.

약속을 정하고 패턴을 만든다. 승부를 개인 기량에 맡기면 한 번은 이길 수 있어도 안정적인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가 고집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단순하다.


알고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


성공으로만 이어져온 삶은 자만심과 객관화의 부재를 초래한다.

그 결과를 지금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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