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의 무게

그래서 내가 칭찬해 줬어

by 무비

집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서 올해 첫 리그 시합이 열렸다.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이 도로 양쪽으로 쌓여 갈 곳을 알려주는 것처럼 하얀 갈래 꽃길이다.

늦어도 10분 전에 도착할 예정으로 나왔지만 꽃길에 쇼핑에 차가 막힌다.


넓은 고수부지에 있는 네 개의 그라운드는 아이부터 회사원, 어르신까지 각자의 장소에서 몸을 풀고 있다.

쌀쌀한 날씨라 시합이 시작하기 전까지 점퍼를 입고 스트레칭하는 사람들과

이미 경기를 마치고 피곤한 다리로 팔자걸음을 걷는 청년들이 서로 웃는다.


중천에 올랐던 해가 기울더니 빠르게 그라운드의 조명을 줄여왔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잠들었다.

갈 때의 긴장감과 기대는 남아있지 않았다.

시합 가방을 무릎에 올린 채로. 진흙이 말라가는 축구화를 신은 채로.

손에 들었던 주먹밥풀이 남은 채로 곯아떨어졌다.

아내는 운전에 정신이 없어 말이 없고, 나는 오늘 플레이에 생각이 많아 말이 없다.


아침의 길잡이를 해주던 하얀 꽃길이 바람에 날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다.


나는 묵묵히 스파이크를 닦고 빨래 거리를 정리했다.

잠에서 깬 아이는 아이패드도 안 만지고 그냥 초점이 흐린 눈으로 앉아 있었다. 잠깐잠깐 내 눈치를 봤다.

오늘 두 게임 모두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스스로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와 약속이 있었다. 플레이 중에 잘한 동료를 칭찬해 주는 것.

그게 팀을 끌고 가는 힘이고 맨 앞에서는 사람의 무게가 아닐까 해서다.

승패가 아닌, 잘함과 못함으로 시작하는 것.

그걸 어떻게 설명하고 알려줘야 할까.


나도 아이 눈치를 봤다.

언제나처럼 빙그레 웃어 풀어줘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둘이 서로 참았다.


다들 쉬는 시간에 상대팀 시합을 보고 와서 쟤네들 플레이 스타일이 이런 거 같아.

수비 아이들과 동그랗게 모여서 이야기하고,

독백 연기 하듯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오른발 왼발 내밀어보고 있다.


그러던 아이가 전반을 뛰고 나서는 하얀 얼굴로 걷기만 했다.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거였다.

땀범벅으로 앞으로 뒤로 옆으로 뛰고, 걸었다.

목소리가 쉬어있다.


그만큼 자기 몫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고 보였다.

여기서 더 몰아붙일 게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목욕할 때 입이 삐쭉하더니 말이 터졌다.

아빠, 오늘 어땠어?


나는 말해줬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리더의 무게를 하필 오늘 겪었다.

다른 아이들은 절대 느끼지 못할 걸 너는 오늘 느꼈다. 그렇게 팀의 얼굴이 되는 거다.


그제야 신이 나서 말이 터졌다.


상대편 시합 보고 와서 골대 좌우에서 가운데로 올려서 슈팅하는 거 같다고 했더니

카즈마가 반대편에서 와서 막아줬어.

슌이 수비까지 내려와 줬어.

그래서 내가 칭찬해 줬어.


어. 오늘 너무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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