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연령 하향에 대한 생각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만 19세가 되면 민법상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후견인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통념도 이 시점을 기준으로 ‘어른이 되는 나이’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뒤집어 생각하면 미성년자는 법적 책임과 의무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의존적 신분’이다. 선거권 행사에 연령 제한이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율성이 갖춰진 적정 연령이 되어야만 선거권 행사가 가능하다.
법적으로 ‘보호’ 지위에 있는 미성년자의 판단 능력은 불완전하다. 미성년자는 술, 담배 구입과 유흥업소 출입이 금지된다. 법적으로 이들의 사고와 생활에 관한 판단력의 미숙함을 인정한 것이다.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험적으로 보건대 교복을 입는 학생에게 성인과 동등한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성년자의 사고와 판단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들의 정치적 판단 능력을 의심할 수 있다. 물론 나이와 정신적 성숙함이 비례하진 않는다. 그러나 법적 보호 신분에, 각종 권리가 제한되며,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선거권을 줘야할 명분은 약하다.
한국의 학생들은 정치적 자율성이 억압되는 교육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인헌고 사태에서 드러났듯 교사의 정치 편향 교육이 팽배한 분위기다. 교육 현장의 구조적 현실도 학생들의 자율성을 약화시킨다. 학생들의 자율적 사고를 방해하는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은 오랜 문제다. 동시에 교사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입시 과정에서 학생들의 교사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실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교사의 정치적 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정치 교육은 필요하나 정치판으로 변질될 교실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입시를 앞둔 고3 학생 교실에 온갖 선거 운동과 정치적 공방이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 연령 하향은 명분이 없다. ‘민주주의 확대’ 구호는 공허하다. 단순히 하나의 연령계층을 유권자로 편입시켜 나아질 제도가 아니다. 이미 기존의 사회·정치적 의제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정치다. 한국 정당 체계 및 구조의 취약성 거기서 비롯한 이념 양극화와 갈등 조정 능력 상실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는 실정이다. 그 개혁을 명분 삼아 선거 연령을 하향시키는 것은 기존의 문제 원인을 유권자에게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혹자는 만 18세가 군 입대, 공무원 시험 응시,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므로 선거권을 줘야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은 만 25세 이상, 대통령은 만 40세 이상이 되어야만 출마 자격이 생긴다. 제도의 특수성에 따라 지정한 연령 제한을 근거로 일률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한 논리다.
참정권은 합리적 기준에 따라 제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외국인, 수형자, 미성년자, 금치산자에 한해 투표권을 제한한다. 같은 민주 공동체에 속한 시민이더라도 누구나 선거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 확대와 권리 보장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당위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 연령 하향의 내용이 담긴 선거법 개정은 졸속 처리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