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만 잡으면 화내는 남편을 이해하려 면허를 땄다.
“저런 사람들을 보면 너무 화가 나. 왜 운전을 하는지 몰라?”
나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그와 함께 살고 있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남자와 차에서 내렸을 때의 남자. 그는 평소에도 욱하는 기질이 있긴 했지만 운전할 땐 굉장히 난폭한 치타가 된다. 특히나 제한속도 110km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로 달리는 고라니를 보았을 때는 더더욱.
남편은 불같은 성미를 드러내며 앞 차의 꼬리까지 돌진한다. 앞 차의 뒤에 바짝 달라붙어선 ‘옆 차선으로 비켜나라’는 무언의 부담감을 팍팍 싣는다. 앞 차가 눈치껏 자리를 옮기면 정말 다행이게. 내가 봐도 정말 태평한 운전자들이 있다. 본인 차 뒤에서 지진이 일어나도 세상모르고, 자신의 앞만 보며 세월을 즐기는 운전자를 만나면 남편의 분노지수는 마구마구 치솟는다.
대개 그런 차들은 라이트를 부릅뜨고 경고를 보내도 반응이 없다. 뒤끝이 좋지 않은 소주의 쓰디쓴 경적 맛을 보고서야 비켜나는 차를 보며 남편은 그제야 안도한다. 그는 안도하지만 나는 울렁이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연애 때부터 남편의 이런 점은 한결같았다. 다른 차량에 대해 분노하며 화를 토해내는 그를 보며 나는 화를 내기도 했다.
“당신이 다른 차에 대해 화나는 부분을 아예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그렇게 화낼 일이야? 당신이 쏟아내는 말들은 결국 나만 듣고 있잖아. 직접 가서 싸울 것도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거나 제치고 지나갈 순 없어?”
“그럼 진짜 가서 싸울까? 나도 직접 가서 싸우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중이야.”
마음속 말을 숨기지 못하고 나도 그에게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 그렇게 원인 제공한 차와는 한참 멀어졌는데 우리의 감정엔 곰팡이가 피어났다. 모난 돌이 부딪치고 부딪치면 가장자리가 깎여 둥그런 돌멩이가 된다는데 도로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대립했다. 차에서 내리면 오히려 내가 더 날 선 사람인데, 왜 저 요물 안에만 들어가면 살진 고양이 같던 사람이 성난 호랑이가 되어버리는지 미스터리였다.
어느 날은 그를 이해해 보겠다며,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진급을 넌지시 꺼냈다.
“내가 당신을 이해해 보려 운전면허를 따볼까 해. 어때?”
당시 남편의 환한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운전학원에 등록했고, 셔틀이 있어 타고 다니겠다며 해도 남편은 굳이 학원까지 데려다주는 성의를 보였다. 시험 일정을 빠듯하게 조정해서 학원에 등록한 지 보름 정도 됐을 즘 빛나는 운전면허증을 얻었다.
나는 원래도 운전이나 차에 관심은 있었다. 결혼 전에도 “왜 운전면허를 안 따?"라는 질문을 받으면, “면허 따면 차 사고 싶을까 봐. 그럼 돈 못 모으잖아.”로 일관했다. 그렇게 35년을 살아왔는데 이런 이유로 면허 취득에 도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 난 세렝게티와 같던 도로 위 가냘픈 한 마리 토끼 같았다. 어디선가 빵- 소리만 들리면 내가 잘못했나? 위축되곤 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이제는 남편이 속도 좀 줄이라고 할 정도로 레이서가 되었다. 아직도 돌발 상황엔 당황하는 초보지만 운전대를 잡을 때 깡다구도 좀 생겼다.
나름 운전이 익숙해졌지만 남편과는 여전히 갈등 중이다. 운전자로 앉아보니 남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됐지만, 그 정도로 열을 내며 화낼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운전하며 화내는 건 성향의 차이였다.
나의 운전 인생은 남편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대리기사 경력도 시작되었다. 든든한 운전자가 있으니 남편은 대중교통이 없는 곳에서도 마음 편히 술고래가 될 수 있었다. 혹여나 내가 힘들까 봐 식당에 도착하면 차를 빼기 좋은 위치에 주차하곤 한다. 왠지 남편의 큰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나 혼자 운전을 하다 보면 꿍얼거리며 불평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남편이 있을 땐 웬만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는다. 언젠가 남편이 세상 못난 운전자들을 포용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그때까진 내가 대리운전기사가 되어도 괜찮겠다며 스스로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