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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Jan 19. 2024

나는 이제 착한 딸 안 할 거야 -2-

"원가족으로부터 아직 독립을 못하셨네요"

"원가족으로부터 아직 독립을 못하셨네요."


한참 요즘의 생활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고 있는 중에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원가족? 독립? 다 무슨 말인가.

어릴 때부터 스스로 척척 모든 일을 다 해왔다. 엄마는 나를 '손댈 게 하나도 없었던 아이'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부모님은 학창 시절부터 내 성적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학교도 학과도 스스로 정했고, 결혼 준비부터 살림 꾸리기, 아이 육아 등 모든 걸 혼자서 알아서 했다. 그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독립을 못했다니. 상담 선생님이 아직 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겠지.


"그런 게 아니고요."


열심히 반박할 말을 찾았다. 충분히 독립적이지만 부모님이 너무 심하게 간섭한다는 이야기를 조리 있고 근거 있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받은 게 많아서 애정이 크게 없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이 자식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사사건건 필요할 때마다 불쑥불쑥 찾아오고 전화를 한다.

나는 아무 문제없고 부모님이 문제라고요!


"그럼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상담 선생님이 제시한 것은 이랬다.


1. 어머니에게 요즘 나의 상황에 대해 알리기
2. 시간 내기 어려우니 어디 같이 가자는 연락은 며칠 전에 미리 얘기하라고 하기
3. 당일에 갑자기 한 부탁은 '미리 연락 안 했으니 들어줄 수 없다' 거절하기
4. 정 안되면 전화받지 않기


상담을 마치고 메모한 내용을 쭉 살펴봤다. 간단한 메모 네 줄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이었다. 이걸 도대체 엄마한테 어떻게 이야기하라는 걸까? 세상에 다른 딸, 아들들은 다 이렇게 살고 있었나? 타인에게는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는 유독 어려운 걸까? 엄마가 특별히 소중한 존재여서일까?






사진: Unsplash의HANVIN CHEONG


아이를 낳고 이대로 가정주부로만 머물기 싫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열망은 가득 있었으나 도대체 그 '뭔가'를 찾을 수 없었다. 각종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자기 계발 프로그램에도 참가 신청을 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면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수면 부족도 아니고 육아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잦은 엄마의 호출이었다.


"오늘 참기름 좀 짜러 방앗간에 가야 하는데~"

"... 알겠어. 몇 시까지 갈까?"


엄마의 부탁이 우선순위 1위였다. 엄마가 전화 와서 해야 할 일을 말하면 곧바로 책을 덮었다. 잠이 부족해 잠시 눈 붙이려고 하다가도 전화 한 통에 다시 일어났다. 전화를 끊고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지르면서도 약속 시간에 늦을까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힘든 사람이고, 나는 엄마가 제일 가깝게 여기는 딸이므로.


무엇보다 나는 딱히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 집에만 있는 줄 뻔히 아는 데 부탁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두 번 약속 있다는 거짓말로 부탁을 거절하고 나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후엔 좀 피곤하더라도 다녀오자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는 운전도 할 수 있고 차도 있었다. 함께 있으면 엄마가 밥 값이며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왜 자꾸 같이 가자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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