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에 대하여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뒤의 나는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괜찮아 보이기 위해
어디까지를 숨기고
어디부터를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서.
괜찮아 보인다는 말이 지나간 자리에는
대체로 아무 말도 남지 않는다.
더 묻지 않아도 되는 상태,
더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 자리에 서면
나는 설명할 기회를 잃는다.
아니, 설명하고 싶지 않아 진다.
이미 정리된 사람처럼 보이는데
굳이 마음의 상태를 다시
꺼내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이런 선택을 한다.
괜찮아 보이는 날에도
굳이 더 괜찮은 척하지 않기.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예전에는
그 침묵이 패배 같았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건 지는 게 아니라
나를 아끼는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데
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몸이 먼저 내려앉는 날이 있다
하루 종일 아무도 묻지 않았던 마음이
그제야 나를 따라 들어오는 날
괜찮아 보였던 하루와
괜찮지 않았던 마음이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밤.
그런 밤이 아직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괜찮아 보인다는 말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게 아니라
그 말 이후의 시간들이
조금씩 나를 살게 했다는 걸.
요즘의 나는
괜찮아 보이기보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도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의 일부라는 걸
조금씩 인정해 보면서.
괜찮아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나는
아주 잘 지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라질 사람도 아니다.
그 정도면
오늘로써는 충분하다고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괜찮아 보인다는 말 이후에도
나는 이렇게
하루를 살고 있다.
— 그릿 G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