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라면서 , 왜 이렇게 무거울까요
“그래도 젊잖아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안부 인사 끝에서도
그 말은 늘 비슷한 타이밍에 등장한다.
막 울음을 삼킨 직후,
아직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
마치 대화의 마침표처럼.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속으로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얼굴로 말한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아직 젊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시간이 많잖아요.”
그 말속에는
분명 나쁜 의도는 없다.
오히려 희망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같은 감정이 남는다.
지금의 아픔은
조금 덜 중요해진 느낌.
지금의 상실은
미래로 미뤄도 되는 감정처럼 정리된 느낌.
마치 이런 뜻처럼 들릴 때가 있다.
아직 젊으니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겠네요.
지금 무너져도, 나중에 다시 세우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너무 아파하지 말아도 되겠네요.
그 순간,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회사에서 힘들다고 말하면
“그래도 젊어서 다행이네요.”
연애가 끝났다고 하면
“아직 젊은데,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삶이 무너졌다고 말하면
“그래도 다시 시작할 나이잖아요.”
하지만 아픔은
나이를 계산하지 않는다.
상실은
시기를 묻지 않는다.
젊을 때 겪는 슬픔이
덜 아픈 것도 아니고,
나중에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아프다는 말을 더 조심하게 된다.
이 정도 나이에,
이 정도 일로,
이 정도 감정에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잘 참는 사람이 된다.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잘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젊잖아요”라는 말은
그 연습을 더 완벽하게 만든다.
지금의 나를 보지 않고
미래의 나로 건너뛰게 만드는 말.
하지만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말을 들을 때
예전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대신 속으로
한 번 더 천천히 번역해 본다.
이 말은
정말 나를 위하는 말일까.
아니면
조금 더 참아달라는 부탁일까.
젊다는 말로
내 감정을 가볍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지금 아픈 건
지금 아픈 거고,
지금 무너지는 건
지금 무너지는 일이다.
나이는 숫자일지 몰라도,
그 숫자 위에 쌓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그 말 앞에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니까 나이 말고
지금 마음 얘기부터 해볼까요?
그 말,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 G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