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애가 있어 다행이네요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던 이유

by 그릿 grit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예의상.


“그래도 애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말투는 부드러웠고,

표정에는 나름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위로였을 것이다.

KakaoTalk_20260121_111050612.jpg

상황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위로 중 하나였겠지.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 말이 지나가도록 두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지나간 뒤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식었다.


아이를 잃지 않았으니

모든 상실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전제.

아이 덕분에

슬퍼할 이유가 조금은

줄어들었을 거라는 암묵적인 계산.

그 말 속에는

내가 잃은 사람의 자리가 없었다.

KakaoTalk_20260121_111437626.jpg

그가 사라진 이후의 밤들,

아이를 안고 혼자 견뎌야 했던 공포,

아무도 대신 서줄 수 없었던 순간들은

모두 “그래도”라는 말 뒤로 밀려났다.


아이를 가진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동시에 더 많은 책임이기도 하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없고,

무너지고 싶을 때 무너질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나는 아이 덕분에

살아냈지만,

아이 때문에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강함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선택지가 없었던 결과였다.

KakaoTalk_20260121_112140942.jpg

그럼에도

“그래도 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은

마치 내가 이 정도의 고통은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그 말은

이런 뜻에 더 가까웠다.

“당신은 이제

아파할 이유가 조금 줄었으니

조금 더 버텨도 되겠네요.”


하지만 슬픔은

대체재로 상쇄되지 않는다.

사람을 잃은 마음은

사람으로만 아프다.

KakaoTalk_20260121_112141394.jpg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잃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 둘은

같은 가슴 안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숨 쉰다.


어쩌면 위로라는 건

무언가를 대신 채워주는 말이 아니라,

그 자리에

같이 있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괜찮게 만들려는 말보다,

빨리 단단해지라고 요구하는 말보다,

그저

“그 말, 참 힘들었겠다”라고

함께 앉아주는 일.

KakaoTalk_20260117_122755719.png

그래서 나는

이제 그 말 앞에서

웃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속으로

조용히 다시 번역해본다.

그 말,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 그릿 Grit

이전 02화아이가 있어서 결혼 다시 하기 힘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