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이면 더 묻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하는 말이 바뀌었다.
“요즘은 괜찮아 보이네요.”
“이제는 좀 정리된 것 같아요.”
“그래도 잘 버텨오셨어요.”
처음엔 그 말이
조금은 다행처럼 들렸다.
내가 드디어
‘걱정해도 되는 사람’에서
‘안심해도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을수록
마음은 더 말라갔다.
괜찮아 보인다는 말에는
질문이 없다.
확인도 없다.
그 말 한마디로
내 상태는 이미 결론 난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런 뜻에 가깝다.
“이제 당신 얘기는
더 깊게 안 들어도 되겠네요.”
사람들은
내가 울지 않는 걸 보고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은 척하는 법,
무너지기 직전에 멈추는 법,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접어 넣는 법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가장 설명할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은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겐 말을 건네지만,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괜찮아 보이는 순간부터
외로움은 더 조용해진다.
아무도
“아직 괜찮지 않은 건 없어요?”
라고 묻지 않으니까.
이제 나는
그 말 앞에서
굳이 웃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는다.
대신 속으로 정리한다.
아,
이제는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게 꼭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그래서 오늘도
그 말 앞에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
괜찮아 보인다는 말 말고,
사람으로 남아 있는지
묻는 질문은 없을까요.
그 말,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