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많아지면 , 아플 권리는 사라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냥, 굳어버렸다.
“이제는 괜찮아야 하지 않나요?”라는.
사람들은
아픈 일이 반복되면
사람도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여러 번 무너졌으니
이제는 덜 아플 거라고.
하지만 이상하다.
처음의 고통은
크고, 분명하고, 설명 가능했다.
주저앉고, 울고, 무너지는 방식으로
누가 봐도 힘든 사람처럼 아플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아픔은 작아지는 대신
안쪽으로 숨어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속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무너진다.
다 겪어봤다는 말은
그 과정을 지나왔다는 뜻이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경험을 ‘면역’처럼 생각한다.
한 번 크게 아팠으니
다음엔 덜 아플 거라고.
하지만 감정은
백신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상실이라도
매번 다른 곳을 찌른다.
다 겪어봤다는 말속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다.
이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죠.
이제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죠.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말 앞에 서면
나는 자꾸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고통은 더 조용해진다.
말하지 않게 되고,
들키지 않게 되고,
결국 혼자서만 견디게 된다.
사실 덜 힘들어진 게 아니다.
다만
힘든 티를 덜 내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아픔을 숨기는 기술은
성장처럼 보이기 쉽다.
다 겪어봤으니 괜찮을 거라는 말은
그 사람의 시간을 단순화한다.
버텨온 날들을
요약본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어떤 시간은
요약할 수 없다.
지나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아프다.
다만 예전처럼
크게 무너지지 않을 뿐이다.
여전히 힘들다.
다만 설명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 말 앞에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
다 겪어봤다는 이유로
덜 아파야 한다면,
그동안의 시간은
대체 누구를 위한 거였을까.
그래서 그 말,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