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비교로 재단하는 말에 대하여
그리고 그 말이 던져지는 순간,
내 마음은 다시 한번
과거로 소환된다.
그 말은 묻지 않는다.
지금이 어떤 상태인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대신 이렇게 정리해 버린다.
최악은 지났으니, 이제 괜찮아도 되지 않겠냐고.
아마 당신에게도 그런 "그때"가 있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가끔은 아직 그 자리에 마음이
묶여 있는 것 같은 시간
하지만 회복은
이전보다 덜 아픈 상태가 아니다.
회복은
아픔을 덜 설명해도 되는 상태도 아니다.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해서
마음이 다 나은 건 아니고
웃을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슬픔이 끝난 것도 아니다.
그저 울지 않아도
하루를 넘기게 될 수 있게 된 것뿐인데
그걸 사람들은 "다 지난 일"로 묶어버린다.
“나아졌잖아요”라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표가 하나 있다.
그때보다 울지 않으면 나아진 거고,
그때보다 말이 많아지면 괜찮아진 거고,
그때보다 웃으면 회복된 거라는 식의.
하지만 우리는 안다
웃을 수 있어도 여전히 아픈 날이 있고,
일상을 살면서도
마음 한가운데는 그대로인 날이 있다는 걸.
밤마다 다시 아플 수 있다는 걸
이런 말을 삼켜본 적 있을 것이다.
"사실, 아직 힘들어요 "
그 말을 꺼냈다가
괜히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될까 봐
괜찮아진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돌아간 것처럼 보일까 봐
사람들은
회복을 직선으로 생각한다.
아팠다가, 나아지고, 끝나는 것처럼.
그래도 그때보단 나아졌다는 말은
그래서 나는 그 말 앞에서
괜히 설명하고 싶어진다.
아직도 힘들다고,
다른 방식으로 아프다고.
하지만 동시에
설명하고 싶지 않아 진다.
왜 지금의 아픔이
여전히 아픈지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할까 싶어서.
그때의 나는
살아남기 위해 버텼고,
지금의 나는
살아가기 위해 조심해진 것뿐이다.
그 차이를
‘나아졌다’라는 말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때보단 나아졌다는 말은
사실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이제 당신의 아픔을
조금 덜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아픔은
듣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오늘의 나는
그때보다 덜 울지 몰라도,
그만큼 더 오래 견디고 있으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지금도 힘들다면
그래서 나는 그 말 앞에서
이렇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