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라는 이름으로 던저진 말들에 대하여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질문하는 쪽이 아니라
질문받는 쪽에 서 있었다.
괜찮아 보이네요.
그래도 애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래도 젊잖아요.
이제는 괜찮아졌죠.
그 말들은 대부분
나를 걱정하는 얼굴로 건네졌고,
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말들이 왜 불편한지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위로인데, 고마워해야 하는 말인데,
내가 예민한 걸까 싶어서.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지 않나.
그때의 나는
잔인하고 싶지 않았고,
무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들은 종종
상대를 편하게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편하게 하기 위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픈 이야기를
조금 짧게 만들고 싶었고,
그 고통이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랐고,
가능하다면
‘이미 지나간 일’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자주 혼자가 된다.
아프다고 말하기엔
이미 충분히 설명한 것 같고,
괜찮다고 말하기엔
마음이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이 시리즈를 쓰며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왔다.
왜 우리는
아픈 사람에게만
이렇게 많은 말을 요구할까.
왜 회복에는
항상 속도와 기준이 붙을까.
그리고 오늘,
이 질문 앞에 다시 선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있지 않나요?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우리가 얼마나 서툴게
위로해왔는지를
조심스럽게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급해지기보다,
괜찮아지라는 말 대신
그저 옆에 앉아
같이 숨 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쪽으로.
그래서 이 시리즈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 말,
정말 위로였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편해지기 위해
급히 붙인 말이었을까요.
오늘은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질문 하나를
마음에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시리즈는
여기까지다.
이제 다른 이야기로
천천히 건너가 보려 한다.
하지만 이 질문만은
조용히 데리고 가고 싶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