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라는 이유로 따라붙는 시선들에 대하여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대답보다 설명부터 떠올린다.
왜 혼자인지
언제부터 혼자인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지금은 괜찮은지
앞으로는 어쩔 건지 까지
이상하다.
아이를 키운다는 말 앞에는
왜 이렇게 많은 해명이 따라붙을까.
요즘은 말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시대라고.
한부모도, 여성도, 개인도
각자의 방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 뒤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조건이 붙는다.
혼자 키우더라도
너무 힘들어 보이지 말 것.
도움받는 티는 내지 말 것.
아이 앞에서는 더 단단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아 보일 것.
혼자 키운다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그럼 더 잘해야지”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프다고 말하면
의외라는 얼굴이 돌아오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그래도 선택한 거잖아요”라는
말하지 않은 문장이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말을 줄인다.
설명하지 않으면
질문도 줄어들고,
질문이 줄어들면
상처도 덜 남는다는 걸
이미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는
여전히 무겁고,
혼자인 밤은
여전히 길다.
다만
그 무게를 말하지 않는 쪽이
더 익숙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 질문을 자주 스스로에게 던진다.
사실
혼자 키운다는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오늘은
조금 덜 설명해도 된다.
혼자 키운다는 말은
증명해야 할 문장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삶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 말 앞에서
이렇게 묻는다
그 말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혼자 키우니까
이제는 더 강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