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만들어둔 새집에서 알을 품고 있던 박새가 떠난지도 한참이 지났다.
복도에 놓아둔 망원경 주변을 서성이던 아이들의 종알거리는 소리도 잦아들었고 실수로 교실까지 날아들던 새들도 이제는 찾아오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졌다. 얼마전에는 눈까지 와서 학교 뒷산의 새들이 먹을 것이 없어졌을 것이다.
학교 출근길에 바라본 논에는 아이들이 '마쉬멜로'라고 부르는 사료용으로 하얀색 랩핑한 벼이삭들이 둥그렇게 말려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벼이삭을 주워먹느라 새들이 바빴을텐데 요즘엔 이마저도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학교 주변의 새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새먹이집 만들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에 제일 많이 찾아오던 새가 어떤 새였지 기억하니?"
"네. 박새요:"
"노랑딱새도 왔었어요"
교실에 찾아온 새들을 잡았다가 이름도 찾아보고 습성도 알아보던 여름 활동을 아이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요. 요즘에는 새가 안와요"
"추워서 그런거 아니야?"
"근데 박새는 뭐 먹고 살아요?"
아. 그렇구나. 아이들과 새의 모습과 특징은 열심히 알아보았는데 이 녀석들이 무얼 먹고 사는지 잘 알아보지 않았다. 함께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찾아보니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아낼 수 있었다.
"선생님 박새 한마리가 10만마리나 되는 벌레를 잡아먹는대요"
"우리 여름에 이상한 벌레 무지 많았는데... 박새가 많으면 그게 다 없어지겠다"
박새가 벌레를 잡아 먹어서 도움이 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10만 마리나 잡아먹는다는 건 나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들 말대로 올 여름 우리 학교 주변에 갑자기 생긴 나방들이 온 산을 새하얗게 뒤덮었던 일도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새들의 먹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이제 슬슬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때가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새들에게 먹이를 줄까?"
"와! 좋아요"
"그런데 벌레를 어떻게 잡지? 겨울에는 벌레가 없잖아?"
"우리반 고슴도치 먹이던 밀웜있잖아. 그거 키워서 주면 안될까?"
앗.. 예상과 다른 방향이다. 밀웜과 벌레라니... 인터넷 검색어를 조금 더 제안해 주기로 한다.
"선생님 생각에는 '겨울 박새 먹이' 이런 단어로 검색해 보면 뭔가 나올 것같아"
"선생님. 박새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는 사실 '땅콩'이래요. 좁쌀도 잘 먹고..."
"그래? 잘 찾았네. 선생님도 찾아보니 겨울에는 곡식이나 쇠기름을 주어도 좋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먹이를 어디에 주면 좋을까? 곡식을 그냥 밖에다 뿌려주면 눈이나 비가 오면 다 젖어버리거든. 새먹이집이나 버드피더 bird feeder 로 조금 더 찾아보고 내가 만들고 싶은 새먹이집 스케치해 보세요"
아이들은 그렇게 일주일동안 새들이 찾아올 새먹이집을 조사해 보고 자신만의 디자인을 시작하고 나는 완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버드피더를 구입하여 학교 뒷산에 매달아 두었다. 아이들이 만든 새먹이집에 새들이 바로 찾아들 수 있도록 미리 주변에 새들을 모아두려고 약간의 꼼수를 쓴 것이다. 버드피더에 땅콩 분태를 넣어 매달아 둔 지 3일이 지나자 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몰려 들었다. 온 산의 새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의 새먹이집 스케치를 바탕으로 일주일이 지난 오늘! '실과' 시간에 새먹이집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올 해는 목재를 구입할 예산이 없어서 몇 해 전 매달아 두었던 새집 중 낡아서 틈새가 벌어진 것을 나무에서 다시 떼어오고 창고에 있는 나무조각이나 다른 활동에서 남은 자투리 물건들을 총 동원해서 뚝딱 뚝딱 제작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새먹이집을 뒷산에 걸어두고 관찰을 시작했다. 지난주 미리 걸어둔 먹이통 덕분에 새들이 끊임없이 날아들었고 아이들이 만든 새먹이집에도 쉴새없이 들락거린다.
여러 종류의 박새와 딱새들이 보이고 할미새와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덩치 큰 새도 몇 마리 발견하였다.이제부터는 쉬는시간마다 이 주변을 관찰하여 어떤 새들이 많이 오는지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함께 탐구해 보는 일이 남았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새집 주변에 숨겨둔 '타임랩스' 카메라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