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창가로 옮겨온 먹이통 그리고 불청객
학교 뒷산에 버드피더를 달아준지 일주일이 지났다. 땅콩을 부숴 넣어준 먹이통은 일주일만에 바닥이 나 버렸고 햄스터 기르던 아이가 고슴도치 주겠다고 가져왔던 해바라기씨로 먹이를 바꾸었다. (고슴도치는 햄스터와 달리 해바라기씨를 먹지 않아서 교실에 한참 방치된 것이었다)
망원경으로 멀리 바라보는 것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욕심에 교실 창가 가까이 먹이통을 옮겨두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과 타임랩스 카메라도 다시 설치해 두고 수업에 들어갔다.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 살금살금 복도를 다니며 관찰해 보라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는 전해 주었다. 덕분에 복도에서 시끄러운 고함소리와 우당탕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은 생각지도 못한 또다른 변화이기도 하다.
1/2교시 블럭수업을 마치자 마자 복도에 다녀온 아이가 서둘러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을 부른다.
"(작은 목소리로) 새가 왔어. 새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도 창문에 옮겨둔 먹이통에도 새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들이 몰래 지켜보고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해바라기씨를 콕콕 쪼아대는 새들이 끊임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급식으로 나온 방울토마토를 가져다 둔 아이들도 있었다. 다음주쯤에는 다양한 먹이를 내어 놓고 어떤 먹이를 가장 잘 먹는지 관찰해 보아도 좋겠다.
다른 학년 아이들도 어떤 새들이 찾아오는지 관찰해 보라고 새그림을 붙여두고 계속되는 아이들의 잠복근무 (?)
그런데 전혀 엉뚱한 불청객을 끌어 들이고 말았다. 동네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던 고양이들이 하나 둘 새먹이집 근처에 낮은 포복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몰려든 것을 보고 사냥을 나왔나보다. 새먹이집이 높이 달려 있어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먹이통을 쪼아대다가 땅에 떨어지는 것들도 만만치 않아 땅에도 내려앉는 새들이 여럿 있어 이 아이들을 노리나보다. .
아이들은 고양이파와 새파로 나뉘었다.
한 아이가 말한다.
"고양이가 새를 잡을 수 있어? 설마 못잡겠지"
"아냐. 우리집 고양이는 매도 잡았어?"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아이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고보니 아이 일기장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 앞에 나서면 쥐며 두더지며 이런 것들을 선물처럼 잡아다 놓곤 한다고 했다.
"그럼 안되잖아. 고양이 못오게 쫒아 버리자"
"왜? 안돼. 고양이도 먹고 살아야지."
"야. 그런게 어딨냐. 우리가 기껏 만들어 놓은 건데 찾아와서 고양이한테 잡아 먹히라고 먹이집 만든 건 아니잖아"
"맞아. 맞아. 아예 먹이집 안 만들었으면 몰라도 우리가 만들었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고양이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냐고 하고 새가 불쌍하다는 아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알고 보니 이번에 찾아온 고양이 중에는 아이들을 잘 따라서 아이들이 '행복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준 녀석도 있었다. 이른바 개냥이였던 것이다. (개냥이 = 고양이인데 개처럼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 부리는 녀석) 그러고보니 그 시커멓고 덩치 큰 고양이 생각이 난다. 사람을 보고 도망도 가지 않는 길냥이라 신기하다 생각했던 녀석인데 아이들이 가끔 참치캔도 사서 나눠주곤 했나보다.
"선생님. 고양이 쫒아버리는 게 좋겠지요~"
나에게 결론을 내 달라는 것같은 질문이다. 한 아이가 말한 '책임'이라는 말에 교사로서는 더 무게를 싣고 싶다만 간단하게 결론을 내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우리 이 문제는 더 많이 이야기 나누며 생각해 보면 좋겠어. 오늘은 수영장 마지막으로 가는 날이라 더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내일까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 생각해 보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보기! 알았지?"
그동안 추위에 떨던 고양이는 허탕을 치고 돌아간 것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르게 한 마리 물어서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