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고 학교 텃밭의 방울토마토, 상추, 가지 등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점심 급식으로 아이들이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 수확되었다.
“상추 좀 뜯어가세요. 그냥 놔두면 너무 웃자라거든요”
“아이들보고 집에 갈때 좀 가져가라고 할까요?”
“아이들 집에도 다들 심어서 잘 안 가져갈걸요”
“그럼 우리 요리라도 해야할까요?”
“우리 6학년은 실과시간에 생태밥상 차려 볼 생각이에요”
“요리로는 다 해결할 수 없는데…”
“그런 우리 이거 팔까??”
이거 팔아볼까? 이 말이 나오자마자 회의가 더 활발해 지기 시작했다. 마침 2학기 우리 학교의 리듬교육과정 주제가 ‘나눔’이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판매보다는 나눔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직접 채소를 나누는 것보다 그 채소를 팔아 판매 수익으로 ‘나눔’ 프로젝트 기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교사들의 고민을 정리한 후 교실로 돌아가 아이들과 수업을 구체화해 보기로 했다.
이제 선생님들은 저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판매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인근 도시의 축제에 나가 일일부스를 운영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고 학교 앞 공터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일일장터를 열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요리를 만들어서 생태요리를 노인회관의 어르신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다 횡성 ‘5일장’에 나가 직접 시장체험도 하고 물건도 판매해 보자는 의견으로 모여졌다.
아이들의 의견이 모여졌으니 이제 선생님들이 할 일은 그 상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횡성 5일장에 직접 나가 사전답사를 해 보니 아무나 가판대를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상인들 저마다의 자리가 있었고 갑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장터에 자리 잡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횡성군청에 연락을 해보니 ‘시장상인회’를 연결해 주셨다. 시장 상인회 사무실을 찾아 아이들과 학교에서 재배한 채소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연말에 나눔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2주 후 열리는 장날 우리 학교에게 장터의 한 자리를 내어 주시겠다고 허락해 주셨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교사의 역할이라면 그것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은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으로 이어져야 한다.
“텃밭에서 무얼 팔 수 있을지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추랑 오이랑 가지도 있어요”
“감자도 심었잖아”
“그런데 우리 올 해는 감자 너무 조금 심지 않았나?”
전교생 34명. 처음부터 판매를 위한 텃밭이 아니라 아이들이 텃밭을 경험하고 조그만 아이들만의 밥상 하나 차릴 생각으로 시작했던 터라 막상 판매할 물건이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텃밭의 채소만 장터에 가지고 나가면 한 시간만에 다 팔릴 것같았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의견을 내 놓는다.
“우리 방과후 시간에 만든 필통이랑 목걸이도 팔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 맞아. 우리 생활용품 동아리에서는 팔찌랑 머리끈도 만든 것이 있어요.
그거 장날까지 조금 더 만들면 팔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우리 풍선아트 동아리는 그 날 손님들에게 풍선 만들어서 나눠드리겠습니다”
학교 텃밭에서 나온 채소를 장날에 나가 팔아서 아이들이 번 돈으로 나눔 활동에 보탤 수 있도록 하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활동이 점 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가 많지 않으니 다른 물건도 팔아보자는 의견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들을 판매하자는 것으로 확장되었고 그냥 물건을 파는 것말고 다양한 이벤트를 해 보자는 의견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자치동아리 활동으로 운영되고 있던 ‘생활용품 동아리’에서 만든 악세서리가 판매물건으로 나오고 ‘풍선아트 동아리’는 손님들에게 풍선을 나눠드리고 방과후 특기적성으로 오카리나를 배웠던 아이들은 작은 공연을 준비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안내하고자 샌드위치맨으로 분장하여 물건 판매 홍보를 하자는 의견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학년마다 국어시간에는 5일장 물건 판매를 안내하고 판매 이유를 설명하는 홍보글을 작성하기도 하고 미술시간에는 홍보포스터와 입간판을 만들었다. 수학 시간에는 저학년은 무게를 재는 방법을 배우고 고학년들은 무게에 따른 가격을 결정하는 법도 배웠다.
“쌉니다. 싸요. 감자 한바구니에 2천원”
“세상에 하나 뿐인 머리끈과 팔찌가 있습니다”
횡성 5일장.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심심풀이로 마실 나오는 공간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처음엔 쑥쓰러워 서로 미루던 아이들도 한 명 두 명 손님이 찾아오자 신나서 외치기 시작했다.
“저희는 서원초등학교 아이들인데요. 이번에 학교에서 기른 채소랑 우리들이 동아리 시간에 만든 물건을 가지고 나왔어요. 이거 팔아서 12월에 나눔활동을 하려고 하거든요. 00건강원 옆에 서원초 장터가 있으니까 한 번 구경오세요”
샌드위치맨처럼 차려 입고 홍보전단을 나눠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도 점차 자신감과 자랑스러움이 배어나기도 했다. 어디서 왔느냐 무얼 하러 왔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에도 또박또박 잘 설명을 한다.
5일장에 아이들과 함께 직접 학교 텃밭의 작물을 판매하는 경험은 아이들도 교사들도 모두 소중한 추억과 살아 숨쉬는 수업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 옆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께 혹 피해를 주는 건 아닌가 싶어 아침에 천막을 설치하면서 주변 상인들에게 떡과 음료를 나눠 드리며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이 수업을 진행한다면 하루의 5일장 판매경험이 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고민과 지역 상인들의 생각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고 5일장에서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방법으로 확장시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