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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에 대하여

쳇바퀴 도는 일상. 우리도 한 마리의 햄스터 인지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대가 늘고 있다. 그만큼 유기되는 반려동물도 많다. 동물을 키우는 일은 어떤 소명의식 없이는 어려울 듯싶다.

어릴 적 물고기를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던 때가 있었다. 수족관이 있는 집은 꽤 드물었던 시대였다. 내가 만든 최초의 어항은 화단 한가운데 거대한 플라스틱 통을 묻고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운 뒤 물고기 몇 마리를 넣은 형태였다. 친구네 집 근처 개울가에서 우리는 진종일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았다. 기쁜 마음으로 내 생애 최초 '화단 어항'에 잡아온 물고기 2마리를 집어넣어주었다. 주변엔 풀이 있고 작은 나무가 있고 보기엔 꽤 그럴듯한 환경이었다.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다. 장마의 시작이었다. 사람이란 참 묘한 동물이어서 무언가를 소유하기 전까지는 소유욕으로 안달하면서 막상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관심은 거기서 끝나버린다. 거대한 장맛비가 쏟아졌다. 물고기 2마리가 살고 있는 화단 어항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산이라고 씌워두어야겠다고 서둘러 나갔을 때는 이미 어항 물이 넘쳤다. 물고기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풀 사이에서 이미 죽어버린 물고기들을 발견했을 때의 죄책감이란...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난다.

친구네 집 근처 개울가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건강히 잘 살았을 터인데 굳이 화단 한가운데 어항을 만들어 가둔 것이... 그들의 생명(살라는 명령)을 앗아버린 결과가 되어버린 셈이었으니까.


개를 키우는 세대도 많았지만 요즘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개를 키웠다. 개들은 주로 마당에 있었고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주로 집을 지키는 용도로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오늘날 아파트에서 키우는 개들은 중성화 수술을 하거나 성대 제거 수술을 받는다. 공동 주택이다 보니 한 밤중에 짖어대는 소리에 민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인의 집을 방문하니 짖지 못하는 개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이한다. 목소리를 잃은 새하얗고 조그만 개는 꼬리로 모든 것을 표현하려 애쓴다. 짖지 못하는 개라니... 만일 누군가 내게서 목소리를 거두어간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이유로나는 개를 키우지 못한다. 그들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앗아갈 용기(?)가 나에겐 없다.



햄스터... 우연히 햄스터 한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아이의 친구가 키우던 햄스터인데 정글리안 종류였다. 쥐처럼 회색털, 까만 눈. 다만 긴 꼬리가 없었다. 밤에 쳇바퀴를 도는 소음 때문에 아이 친구 부모님이 키우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글리안 햄스터 토시를 시작으로.... 햄스터들의 천수에 해당되는 3년마다 햄스터들을 새로 사 왔다. 토시의 죽음,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죽음이었다. 비어버린 햄스터 우리가 보기 안 좋아서 바로 어린 햄스터를 사다가 키운다. 어린 햄스터가 불과 하루 전 토시가 돌던 쳇바퀴를 돌리고 토시가 잠을 자던 곳에서 웅크리고 잠을 잔다. 죽음과 삶...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빈자리를 채운다.


여러 번 햄스터들이 바뀌었다. 처음 햄스터를 사러 가던 날 햄스터의 생명 값이 5000원도 안 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햄스터 가격이 3500원 정도였다.)

햄스터를 키우면서 사람처럼 햄스터들의 성격이나 행동이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이 맞이하는 노화. 자연스러운 죽음도 사람과 마찬가지다. 레오는 푸딩 종류의 연한 베이지색 털을 지닌 햄스터다. 레오가 쳇바퀴 돌리기를 힘들어하고 시력이 약해지면서 눈앞의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먹이를 먹을 수 없을 테니까.... 안약을 처방받고 돌아오니 햄스터 한 마리 가격이 3000원 남짓인데 진료비는 25000원이 나왔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아픈 반려동물을 치료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것은 눈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이었을 것이다. 생로병사라는 너무도 당연한 순리를 거치는 중이었으리라.


햄스터들은 좁은 우리 안에서 평생을 살다 간다. 대부분의 햄스터들은 여름은 못 견뎌한다. 원래 햄스터들이 서늘한 동굴에 주로 서식했다고 하던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인지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버린다. 에어컨을 켜주거나 우리 앞에 미니 선풍기를 달아주면 비로소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햄스터도 사람처럼 움직이기 좋은 봄. 가을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햄스터들도 노화의 과정을 거치다가 종국에는 우리 안에서 잠자듯 소멸한다. 어쩔 때는 아침까지 멀쩡하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죽어있는 경우도 있고. 밤새 쳇바퀴 돌리며 잘 놀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어있는 경우도 있다. 봄이의 최후는 특이했다. 봄이는 순하고 애교스러운 햄스터였다. 어떻게 탈출했는지 모르지만 거실을 통과해 책들이 가득한 책방까지 간 것이다. 한 밤 중에 책들 사이에서 갑자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봄이가 얼굴을 내밀었을 때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봄이는 당연히 햄스터 우리에 있는 줄 알았다. 사실 그날따라 바빠서 햄스터 우리를 거의 들여다보지 못해 봄이의 탈출을 알아채지도 못하였다. 책들 사이에서 봄이가 고개를 내밀고 한참 나를 바라볼 때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겨우 붙잡아서 우리에 데려다주었다. 햄스터 일생에 가장 어마어마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베란다 근처에서 책방까지 어떻게 간 것일까? 봄이도 주인을 닮아 책 냄새에 끌렸던 모양이다. 봄이는 탈출 후 이틀 뒤 잠을 자듯 죽어버렸다. 알 수 없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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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데려온 여름이는 봄이와 정반대 성격을 지닌 햄스터였다. 몸집도 꽤 크다 보니 쳇바퀴 돌리는 소리도 요란했고 심지어 쳇바퀴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지키도록 쳇바퀴를 도는 활동적인 여름이에게 햄스터 우리는 좁아 보였다.

여름이는 평생 노화를 모르는 햄스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름이의 노화는 빨리 찾아왔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여름이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인지 모른다. 여름이가.... 진종일 잠을 잔다. 새하얀 배가 여름이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한다.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먹이를 언제 먹는지. 제대로 먹기는 먹는지 알 수 없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여름이는 앙상해 보인다. 견과류와 치즈와 과일을 새로 넣어주지만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압축하여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젊음의 시간. 쳇바퀴가 부서지도록 달리던 햄스터. 좁은 우리에서 햄스터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먹거나 잠을 자거나 위, 아래층으로 오르내리거나 쳇바퀴를 돌거나... 햄스터가 달리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두어진 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다 한다 해도 하루는 무료하다. 쳇바퀴 돌 듯 그렇게 시간은 간다.


사람의 일생도 햄스터의 일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의 우리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산다. 눈앞의 모이에 만족하고 뽀송한 톱밥에 만족한다. 뻔한 일상을 반복한다. 햄스터들은 우리 안에 저마다의 삶을 풀어놓는다. 한 생(生)들이 우리 안에 있다. 톱밥에, 목욕 모래에, 쳇바퀴에...

잠든 여름이는 무슨 꿈을 꾸는 중일까? 여름이의 오르락내리락하는 배를 바라보며 아직 살아있음에 안도한다.

햄스터를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반복되는 일상, 무의미한 일들, 사소한 것들에 쫓기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나... 기타 등등 자질 구레한 모든 일들도 결국은 여름이가 돌리는 쳇바퀴의 범주와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나도 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한 마리 햄스터 인지도 모른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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